결혼을 축하드려요~

드디어 저희 형(KLDP 프로파일, 모질라 포럼 프로파일: low profile을 유지하려는 저의 형 때문에…)이 2006년 4월 23일 결혼을 했습니다. 저도 사촌 형수님이 아닌 친형의 형수님이 생겼구요^^. 형수님과 아직 이야기는 많이 못해봤지만 정말로 멋진 분이시고, 두 분은 참 잘 어울리는 커플입니다. 광주와 대구에서 자라난 두 사람이 새로운 터전 대전에서 사랑을 키워가게 됩니다. 두 사람이 처음처럼 끝까지 서로 사랑하고, 서로 존중하여 평등하고, 평화로운, 행복이 넘치는 가정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신정식-조민희 결혼 사진

내면에 눌려있는 평화를 일깨우는 책: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책표지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고 박노자와 같은 분이 한국인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다른 문화권에서 온 놀랍도록 감수성이 뛰어난 한 한국인이 우리가 자아도취에 빠지거나, 일상화되어 느끼지 못했던 우리의 자화상을 너무나도 잘 지면화했기 때문이다. 그런 박노자 교수의 또 하나의 저작,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라는 책의 부제는 박노자의 북유럽 탐험이다. 우리가 막연하게 이상적인 복지 사회로 부러워 마지않는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등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을 박노자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가 궁금했다. 그리고 책의 첫머리에서 보여지는 노르웨이의 사회는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 사이의 체계도, 위아래도, 질서도, 권위도 없는 곳이었다. 다만 사람이기 때문에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지, 어떤 사람이 교수라고 해서, 또는 버스 기사라고 해서, 다른 인종이거나, 왕자이거나 심지어 죄수라고 해서 특별히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거나, 권위를 내세우거나, 다르게 대하지 않는 사회! 분명 부러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가 바라본 노르웨이 사회의 민주성과 선진성은 완벽한 것이 아니었고, 북유럽 사회의 번영과 평화 이면에 침략의 역사와 제3세계 문제에 대한 외면, 혹은 주변부 국가들의 고통이 있고, 그들의 민주주의는 온 세상에 적용되는 보편적 가치라기보다는 그들 국가 내부에 한정된 개념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꿈꾸기 힘든 좌파 노동당이 집권하고 있고, 국가에서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을 제공하고, 소수 지방 언론과 공산당이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다양한 의견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는 노르웨이 사회는 분단의 벽에 가로막히고, 국가 보안법의 올가미에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잡혀가고, 혼혈아가 트기라고 놀림받으며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우리로서는 동경스러운 곳이 아닐 수 없었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북유럽 사회나 한국 사회를 가리지 않고 인류가 지금까지 문명 또는 국가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온 폭력에 대해 맹렬히 고발하고 있다. 온건한 민족주의조차도 어떻게 히틀러의 광기로 변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에서, 우리 나라의 현실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일본을 비롯한 외세의 폭력적 침탈에 시달리고, 분단과 대치, 오랜 군사 독재 통치라는 특수한 상황에 오래 머물러 있다보니 민족주의가 민주주의적 가치와 혼합되고, 은근하게 핏줄과 혈통이 인류의 보편성과 다양성보다 더 중요하게 자리잡아왔다. 특히 이런 잠재된 혈통 집단 우선주의는 최근의 황우석 사태에서 보듯이 맹목적인 애국주의와 국가주의의 광풍으로 변형되어 생산적인 토론과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고, 다른 인종, 다른 나라, 다른 민족에 대한 배제와 적개심으로 발전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사냥, 군복무, 학교에서의 체벌, 동물원에서 죄없이 무기징역을 살아야 하는 야생 동물들, 포르노 영화속의 강간과 같이 이미 만연한 인류 사회의 폭력에 대해 그는 단호하게 맞서고 있다. 그리고 폭력을 거부하는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여 양심적 병역 거부와 대체 복무가 이미 전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집단, 특히 국가의 명령은 종종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신비화되어 군복무는 조국의 부름이 되고,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불려져왔다. 우리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향해 힘든 일을 기피하려는 남자답지 못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해오고, 우리가 겪었던 폭력에의 추억을 당신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는 잔인한 논리로 양심과 종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군대에 몰아넣어, 수 천명이 군 내부에서 의문사당하거나 자살하고 있다. 개인의 양심에 따라 군대의 극단적인 폭력만은 거부하겠다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는 감옥에 가거나 군대에 끌려가 폭력과 권위에의 복종을 배우고, 실습하고 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권이 없다. 심지어 전 사회가 병참 기지로 바뀌기를 진정 원하는 것인지, 여성까지 군복무를 시켜야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성장하면서 내면에 체득해왔던 폭력과 불평등에 대한 자각, 그리고 혹시 어렸을 때에 간직하고 있었으나 어른이 되면서 까맣게 잊혀져버렸을 우리 마음 속의 평화와 인간 존중의 심성을 다시 일깨워주는 책, 권하고 싶은 책이다.

Intermezzo from Cavalleria Rusticana (Mascagni)

GS1000 synthesizer마스카니의 오페라 까발레리아 루스띠까나에는 유명한 곡이 몇 개 있는데 가장 유명한 곡이 아마도 이 간주곡이고, 그 다음에는 오렌지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Gli aranci olezzano)인 것 같다. 오렌지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는 고등학교 때에 숙제로 오페라를 보고 오라고 해서 광주 오페라단의 공연을 봤을 때 들었던 것이 전부라 주제 부분 아주 일부 빼놓고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런데 이 간주곡은 워낙 유명해서 광고에도 자주 쓰이고 라디오에도 자주 등장한다. 오늘은 이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곡을 GS1000 건반으로 연주한 후 역시 Line-In을 통해 아날로그 녹음을 하고 다시 dBPowerAmp를 이용해 MP3로 인코딩하였다.
Download Intermezzo from Cavalleria Rusticana (arranged and played by Greg Shin)

인류의 자랑, 아름다운 인위쩐

왼쪽: 인위쩐과 바이완샹 부부, 오른쪽:메마른 사막에 나무를 심기 위해 양동이로 물을 붇는 장면

수요일 저녁, 회사에서 당직이 있는 날이었다. 근무를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당직실에 들어갔고, 잠이 오질 않아 TV를 켰다. 수요 기획, 숲으로 가는 길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도저히 믿기지 않는 허구같은 감동적인 실화를 접하게 되었다. 인위쩐. 그녀는 나이 스물에 중국의 내몽고 자치구인 ‘모우스’ 사막 가운데에 시집을 오게 되었고, 사방 몇 십 킬로미터 내에 사람은 커녕 마차 한 대도 없는 토굴에서 밤낮으로 악령처럼 몰아치는 모래바람을 피해 살아야만 했다. 사람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시집 와서 처음 지나가는 사람의 발자국이라도 남겨보려고, 사막에 남은 발자국을 그릇으로 덮어놓을 정도였다고 한다.

아마 보통 사람 같으면 도망을 치거나, 아니면 미쳐서 자살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녀는 그 작은 몸으로 사막의 황사와 싸워 이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시작했다. 19킬로미터나 떨어진 묘목장까지 걸어가 묘목을 사다가 희망이라곤 도저히 보이지 않는 황량한 사막 위에 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었다. 인류가 살아가면서 사막화는 더욱 가속화되어간다는데, 그 끝자락을 모질게 붙잡고 나약해보이는 한 인간이 사막을 숲으로 바꾸는 일을 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무를 심기를 20년, 여의도 면적의 9배에 이르는 사막을 그녀와 그녀의 남편 바이완샹이 숲으로 바꾸어놓았다. 이제 사막에 나무가 자라니, 이웃들과 친척들도 그들 곁에 오게 되고, 사막은 사람과 나무, 닭과 여우와 양과 같은 생명이 살아가는 정겨운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서, 그들은 조금씩 조금씩 그들의 나무를 오늘도 심고 있다. 중국 당국은 기념비를 세워, 그녀를 중화민국의 자랑이라고 썼다. 어찌 중국만의 자랑일까, 인위쩐은 온 인류의 자랑이다. 오늘 서울에는 올해 들어 최악의 황사가 닥쳐 시가지는 온통 누렇고,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거나 입을 가리고 황급히 들어가는 모습이다. 우리는 막강한 기술과 자본을 이용해 자연의 갯벌을 없애 새만금 간척지를 만들고, 천성산을 뚫어서 굉음을 내며 고속철이 지나가게 하고, 평택의 평화로운 마을 대추리와 도두리에 포크레인과 경찰을 동원하여 농수로를 부숴 군사 훈련장을 만들고, 백두대간의 숲에 스키장과 골프장을 지으면서 숲과 자연을 파괴할 줄은 알았지만, 인위쩐과 바이완샹처럼 이미 사막이 되어버린 곳을 숲으로 바꾸지는 못했다. 거대한 자연의 모래 바람에 온몸으로 맞서 사막을 숲으로 가꾼 인위쩐!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눈물을 흘려보기도 참 오랜만이다.

웹 2.0 시대의 기회, 시맨틱 웹을 읽고

시맨틱 웹 책표지문서들간의 연결로 이루어진 현재의 웹이 의미적인 데이터들의 연결로 바뀌어,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가 데이터를 생성해낼 수 있는 미래의 이상적인 웹이 시맨틱 웹이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시맨틱 웹이라는 말보다 웹 2.0이라는 말이 더 인기있게 오르내린다. 한 때 웹에 관심을 좀 가져보았다고는 하지만, 회사에서 하는 일이 웹과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다 보니 빠르게 변화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는 웹 2.0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어렵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점점 일상 생활의 매너리즘에 빠져가는 즈음에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큰 행운이다. 지은이 김중태님은 예전에 박수만님웹 표준 번역서가 나왔을 때 기념 모임에서 뵈었는데 아마 그 모임에 나온 사람들 중에는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이셨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 나라에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직접 기술을 하는 것을 등한시하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매우 열정적으로 글을 쓰고, 강연하고 또 캠페인을 하시는 것을 보고 참 대단하신 분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시맨틱 웹이란 용어를 접한 것은 2003년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을 우리말로 번역하면서였다. 접근성을 파헤칠수록 나름대로의 결론은 의미적으로 견고한 문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껴졌고, W3C의 다른 문서들을 봐도 시맨틱 웹이란 단어가 항상 등장했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시맨틱 웹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하고 호기심을 갖게 된 계기는 Tim Berners Lee 경영국 Royal Society에서 강연한 미래의 웹이라는 비디오를 보고서였다. 그러나, 호기심에서 더 깊은 이해로 발전되지는 못하고, 세월은 흘렀고, 요즈음 나오는 웹 2.0이라는 개념들은 나와는 한참 거리가 먼 이야기가 되어갔다. 이 책은 그렇게 둔해진 나의 관심을 다시 일깨우기에 충분한 교양 서적이었고, 재미있었기 때문에 짬짬이 틈을 내어 3일만에 뚝딱 읽을 수가 있었다. 우선은 관심 바깥이었던 블로그, 트랙백, 태그, RSS, Ajax, 유비쿼터스, 그리스몽키, 소셜 네트워크 등에 대해 이해하게 된 것이 반가웠다. 지은이는 어떻게 이렇게 많은 개념들을 예의주시하고 놓치지 않고 있었을까? 이런 궁금증도 책을 읽어보면 어떻게 너무 많은 정보 속에서 자기가 원하는 관심있는 정보만 골라내어 볼 수 있는지 요즘의 최신 기술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다. 웹 2.0 개념이 처음 O’Reilly 사에 의해 제기되었을 때에, 그리고 국내 네티즌들과 언론들이 관심을 보일 때에도 나는 그것이 최신의 기술적 경향들을 억지로 무리지어서 다시 이목을 끄려는 실체없는 상술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던 것 같다. 2.0이라고 붙여도 좋을만큼 일정한 방향성을 가진 커다란 변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웹을 이용해 서비스나 기술을 제공하는 기업이라면 지금부터라도 이것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하지 않으면 변화에 뒤쳐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은이의 말대로 지난 3년을 되돌아보면 엄청난 변화가 우리 생활을 바꾸어놓았듯이, 향후 몇 년에 그런 엄청난 변화를 주도할 기술이 웹 2.0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웹 2.0이라는 약간은 상업적인 용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일반적으로 많은 정보를 어떻게 다루고, 표현하고, 유통하고, 획득하는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아직 시맨틱 웹이 제대로 구현되려면 무척이나 많이 해결해야 될 과제들이 있지만, 현재까지 인류가 구현해놓은 많은 기술들만 살펴봐도 미래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통찰력을 갖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일을 하든 스스로 웹과 관련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현대 사회에서 없다. 그렇다면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일상 생활을 변화시키는 데에도 기여하리라고 믿는다.

He passed away

I was shocked yesterday that one of our members in CMHV took his checquered life by himself. Some of CMHV members including me visited his funeral home in Korea University Anam Hospital. He had suffered from chronic mental illness, maybe schizophrenia (and bipolar disorder) since his early twenties. I clearly remember: he was almost always grumbling that he had not enough money to join us when we tried to visit, eat, or go somewhere. Although CMHV does not provide any monetary support for individuals, we always chose the option which is nearly free or so cheap. I felt sorry for his poverty and sometimes would like to give him some pennies, but didn’t do a lot in our casual meetings. I could not decide if his grumbling was caused from his real destitution or it was one of his symptoms. He was always drunken — suspected alcoholic, so we had to figure out with our ears flapping what he was trying to say.

However, I deeply regret his death and feel really sorry about that we did not do anything although his prognosis was not so good recent days when we observed him in our monthly meeting. We might have to report it to a doctor. We talked about his death after visiting the funeral place, and I felt helpless that we, as a volunteer friend will be able to do only a little in the future to prevent this kind of suicide.

집 구하기

오늘 오전에 오산 서울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마치고 (위내시경 하고 나니 호스가 들어왔다 나간 목이 너무 아프다.), 오후에 오산에 살만한 집을 알아보러 돌아다녔다. 원칙은 혼자 살기 적당한 작은 평수의 아파트, 빌라, 또는 원룸이되, 가격 상한선을 정하고, 월세가 아닌 것을 찾기로 했다. 인터넷의 부동산 사이트에서 대충 검색해보고 해당 부동산에 전화를 하면 영낙없이 집이 나갔다는 것이다. 인터넷에 보면 오늘 올라온 매물로 되어있는데 말이다. 그러니 인터넷 정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보였다. 그럴거면 인터넷에 정보를 올리지 말든지 할 것이지, 아까운 인터넷 트래픽을 낭비해가며 몇 달 전에 나간 집들을 그대로 올려놓는 건 뭔지 모르겠다.

다리품을 팔며, 버스 타고, 택시 타고 오산 시내를 휘젓고 다녔다. 시내와 가까운 운암 아파트 단지 근처, 그리고 이마트가 있는 원동 근처, 마지막으로 회사에서 가까운 청호동 근처의 아파트와 빌라를 보기 위해 부동산을 대여섯 군데 들렀고, 세 개의 집을 봤다. 웬만한 것은 다 월세이고, 전세로 나온 것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내가 정한 가격 상한선으로는 살만한 집도 없었다. 의식주는 삶의 기본 3요소인데, 그 중에 하나인 집 값이 월급 노동자의 연봉 가지고는 몇 년을 저축해도 도저히 구입이 불가능하게 되어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살기 위한 목적이 아닌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집이 변질되고, 투기에 의해 집값 뻥튀기가 되풀이되면서 집값이 오른 사람은 반짝 즐거워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집을 살 때에 필요 이상의 더 많은 금액을 요구하고 다른 소비의 선택을 제한하여 고통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을까. 정부에서 집값을 잡기 위해 별의별 수를 다 쓴다고 하니 두 손을 들고 반길 일이고 더 강력한 투기 억제 및 집값 안정 정책이 나오기를 목빼고 기다리지만, 이미 집이 투기와 재산 증식의 목적으로 인식되어진 사람들의 의식 구조가 크게 바뀌지 않으면 어떤 정책이 나와도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나는 개인적으로 집이나 토지와 같이 한정된 재화이지만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자원에 대해서는 공개념을 넓게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어쨌든 오늘 본 세 군데 모두 딱 마음에 드는 곳은 없었다. 한 곳은 집도 넓고, 시설도 그런대로 괜찮은데, 주변에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논밭만 보였다. 차도 없는 내가 수퍼에 뭐라도 하나 사러 나가려 한다면 아마, 옛날 시골에서 읍내에 장 보러 갔다 오듯이 해야 할 것처럼 보였다. 고민을 했다. 인터넷 시대이니 욕심을 조금 버리면, 자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수퍼도, 세탁소도, 식당도, 미용실도, 과일 가게도 없는 곳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연금술사의 저자 파올로 코엘료도 프랑스 시골에서 그렇게 살지만, 자기는 인터넷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결코 떨어져 있지 않다고 들었다. 그러나 자신이 없었다. 젊은 날 그렇게 외진 곳에서 내 자신을 잘 추스리면서 외진 곳에서 나를 발전시켜가며 살 자신이 서질 않았다. 당장 내가 서울에서 아무 생각없이 동네에 추리닝 바람으로 나가도 이발 좀 해야지 하고 머리 깎고, 제과점에 들러 빵 좀 사야지 하고 빵을 사고, 여름에 약국에 들러 모기약을 사는 행동 습관을 바꾸어야 하지 않은가. 계획에 의해 시내에 나가 사야 할 물건 목록과 처리해야 할 목록을 만들고 하루에 그 일을 완벽하게 끝내고 다시 적막한 집으로 돌아오는 시나리오가 그려지질 않았다. 부모님과 형과 상의했다. 어떤 집이 좋겠는지. 결국 그나마 시내에 가깝고 동네에 사람들도 살고, 이런저런 가게도 있는 원룸을 선택하기로 했다. 내일 다시 부동산에 전화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