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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is categoy, Greg is about to show his personal book reviews, and impressions on various commercial art, music, and performance.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갔다 오다

윤동주 별 헤는 밤 전시회 포스터 (2017년 12월 27일에서 2018년 1월 27일까지 용인 포은아트홀 갤러리)내가 사는 동네에는 포은아트홀이라는 큰 예술 공연장이 있다.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한 일인데, 막상 포은아트홀에서 하는 공연이나 갤러리에서 하는 전시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이 곳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전, 별 헤는 밤”를 보게 되었다. 윤동주는 시인인데 왜 미술 전시회일까라는 약간의 궁금증으로 전시장에 들어가서 그림들을 한 두 개 보고 있을 무렵, 누가 다가와 책을 한 권 준다. 2017년에 출간된 별 헤는 밤(책)은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집이다. 윤동주의 시 작품 하나하나를 모티브로 하여 6명의 화가들이 시를 각자의 방식으로 그림으로 탄생시킨 그림과 윤동주의 시를 엮어서 시그림집으로 만든 책이었다. 전시회는 미술 전시회지만, 당연히 시를 모르고 그림만 보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책을 펼치고, 그림과 짝지어진 원본 시를 하나씩 읽어나가면서 그림 감상을 하였다. 처음에는 약간 건성으로 시와 그림을 보았는데, 두 세 작품을 보다 보니 건성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시가 너무 깊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내가 미술 전시회에 와서 이렇게 오랜 시간 한 작품 한 작품을 감상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윤동주의 시를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내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다. 상상을 해보았다. 이 시를 읽고 어떤 그림이 떠오르는지. 내가 상상한 시의 이미지와 화가들이 표현해낸 그림이 비슷한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매우 달랐다. 다시 말해, 흔히 아름다운 시에 투명하고 화사한 수채화 배경 그림이 입혀진 그런 시화전이 아니었다. 20세기의 위대한 시인의 문학 작품을 소재로, 21세기 현대 미술가들의 회화가 탄생했지만, 둘은 또 독립적으로 각자의 영역에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전시장에서 책의 뒷편에 있는 윤동주 시인에 대한 소개와 작품 해설 부분을 마저 읽었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일본 군국주의 광기가 극에 달하던 1945년 2월에 끝내 광복을 보지 못하고, 27세의 젊은 나이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 윤동주! 그는 작품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일제에 저항했다기보다, 어두운 야만의 시대에 나는 어떤 모습인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하며,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하는 젊은 지식인이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가 바라는 이상의 세계,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곳을 그리워하며 노래하였다. 그 이상 세계의 집약체가 “별”로 나타나고, 때로는 “고향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불행한 시대에 한 나약한 학생에게 요구하는 광폭한 도전들에 대해 그는 아침을 기다리는 절대적인 의지와 맑은 영혼을 유지하고자 저항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그의 삶과 작품들에 대한 해설을 정독하고, 다시 작품들을 읽어보았다. 시인은 “쉽게 씌어진 시”에서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이 부끄럽다고 고백했지만, 그의 시는 결코 마술같은 언어의 유희가 아니라, 깊은 내면의 성찰이 그의 삶에 투영되고, 다시 그것이 압축되고 조탁되어 탄생한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시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학교 다닐 때에 나의 짝꿍이 졸업할 때에 자기가 좋아하는 시 여러 편을 노트에 적어서 나에게 선물로 준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고마운 친구인데, 그 때에는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시에 심취한 사람들도 있구나 정도의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시에 조금 관심을 가지게 된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 하나는 밥 딜런(Bob Dylan)이 노벨상을 받으면서 그의 노래 Blowin’ in the Wind를 비롯한 노래들은 도대체 무슨 가사였을까를 다시 보게 되었다. 영어라는 핑계로 노랫말을 대충 흘려듣고, 노래만 듣기에는 너무 아까운 가사들이 많았다. 그래서 노래에 가사들을 더 관심있게 보게 되었다. 또다른 계기가 있었다. 최근에 나의 아버지가 나이 일흔이 훨씬 넘어서 시인으로 등단하셨다! 아버지가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이 공부하고, 연구하고, 관찰하고, 경험하고, 습작하는지를 대략 옆에서 바라보면서 깜짝 놀랐다. 아버지는 꾸준히 연구하고, 공부하고, 스케치한 내용을 수 백 페이지의 노트에 정리하고 계셨다. 그리고 집에 가면 나에게 작품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고, 평을 해달라고 요청하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현대 국어의 맞춤법에 비추어 이 부분은 이렇게 고치는 것이 좋겠다는 정도의 조언과, 아주 표면적인 감상평 정도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시들을 보면서, 나도 조금씩 시를 감상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 매우 큰 변화였다.

이번 시그림전에서 불행한 시대를 살다가 안타깝게 젊은 나이에 요절한 윤동주 시인과 그의 작품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도 소득이었고, 그런 문학 작품을 화가들은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했는지를 엿보는 것도 새로운 재미였다. 왜 전시회장 벽면에 시를 직접 써붙이지 않고, 불편하게 시집을 따로 책으로 나누어주었을까 생각해보았는데, 책으로 나누어주지 않았으면 이렇게 시와 해설을 정독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하나 사서 아버지에게 선물로 보내드려야겠다.

러빙 빈센트를 보고

동서고금, 음악과 미술 등 모든 예술 장르를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 한 명을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빈센트 반 고흐를 꼽을 것이다. 그를 처음 접한 것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주셨던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30권인가 50권짜리 명화집을 통해서였다. 화가별로 정리된 명화집에서는 고전적인 앵그르, 다비드에서부터 낭만파의 거장 들라크루아 (그 책의 표기로는 드라크라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수 많은 인상파 화가들, 마네, 모네, 드가, 세잔, 고갱, 쇠라, 그리고 어린 시절 꼬마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고흐의 대표적인 그림들이 해설과 함께 정리되어 있었고, 맨 마지막은 뭉크 등을 거쳐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렸을 때에는 그저 다른 화풍의 그림들을 보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렇게 막연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많은 화가 중의 한 명이었던 고흐가 나의 가슴 속에 들어온 두 번의 계기가 있었다. 한 번은 2주 동안 네덜란드로 출장 갔을 때, 반 고흐 미술관에 가보았던 것이었다. 사실 나는 그 때까지 렘브란트, 몬드리안과 함께 고흐가 네덜란드 사람인 것도 몰랐었다. 내 기억에 그 미술관에 고흐의 작품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흐라는 작가와 그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첫 번째 계기였음은 분명하다.

두 번째로 그를 더 강렬하게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살아있는 동안 단 한 점의 그림만을 팔 수 있었던 고흐는 평생 가난과 고독에 시달리며 살았지만, 맑은 영혼을 소유한, 깊이 고뇌하는, 그리고 자연과 인간, 노동에 대해 진실한 존경을 보여주었던 위대한 예술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가로서 그는 그림을 통해서 그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고 하였다. 그의 그림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하고, 라이브하고, 다채롭고, 역동적이다. 하지만, 그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들을 통해서, 나는 내가 그림에서 충분히 보지 못했던 그의 생각, 삶에 대한 태도, 조금 더 깊은 예술가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 이후 그에 대한 노래, 돈 맥클린(Don McLean)의 빈센트는 가장 좋아하는 팝송 이 되었고, 고흐의 노란 해바라기 그림을 배경으로 한 우산을 산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존경과 팬심(?)의 표현이었다.

어제 그에 대한 영화, 러빙 빈센트를 보았다. 보고 싶은 시간대에 세 편의 영화가 있는데, 뭘 보겠냐는 아내의 질문에 나는 이 영화를 보자고 했는데, 막연히 고흐에 관한 영화겠거니 하고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가서 보게 되었다. 영화 시작할 때 나왔다. 100여 명의 화가들이 참여해 직접 그림을 그렸다고. 그리고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흐의 화풍을 재현한 화가들의 그림들이 초당 12 프레임의 애니메이션으로 진행되었다. 책 속에서, 작품집에서 정지되어 있던 고흐의 그림들이 꿈틀대고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의 그림 속의 인물들이 고개를 돌리고, 웅크리고 앉았던 사람이 일어서며, 들판을 달리던 기차가 실제 연기를 뿜어내고 경적을 울렸으며, 그림 속의 등불이 아른거리고, 밤하늘의 별이 휘둥그렇게 빛을 내뿜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가슴이 뛰었다. 특히, 가셰 박사와 아르망의 대화 장면은 마치 고흐가 만든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만큼, 라이브한 인물과 배경이 아름다웠다.

고흐 인생의 마지막 거처인 프랑스의 오베르 쉬즈 우아즈에서 그의 삶과 주변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절대적으로 침착한(absolutely calm) 상태였다고 고백했던 고흐가 6개월만에 자살로 삶을 마감한 것과 관련된 미스테리를 우편배달부의 아들, 아르망 룰랭이 추적하는 형태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영화를 통해, 그가 살았던 19세기 말, 100명의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서 프랑스 시골 마을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이 행복했다. 하지만, 위대한 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렇게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그 당시의 상황과 배경, 그리고 조금씩 드러나는 그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영화 보는 내내 무겁게, 안타깝게 마음을 짓눌렀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 크레딧과 함께 빈센트(Starry, starry night으로 더 알려진 노래) 음악이 나왔을 때에는 마치 나의 가까운 지인을 방금 떠나 보내는 것과 같은 슬픔이 밀려왔다.

고흐의 편지집에는 밑줄 쳐가며 기억하고 싶은 문구들이 매우 많았다. 그가 실제로 부치지 못한 마지막 편지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그래, 내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우리는 그가 생명을 건 작품들을 통해 위로받고 있는 것이다. Thank you, Vincent!

더 뉴 소셜 러닝(The New Social Learning)을 읽고

소셜 러닝 책표지더 뉴 소셜 러닝(The New Social Learning)은 아마존에서 네 번째로 구매한 전자책이다. 한국 회사들이 해마다 수 백 명의 사람들을 컨퍼런스에 보내는 미국 교육훈련 협회(ASTD, American Society for Training and Development)의 최고 경영자 토니 빙햄(Tony Bingham)과 컨설턴트인 마르샤 코너(Marcia Conner)가 쓴 책이고 ASTD가 출간하는 책 중에 2010년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기록되었다.

소셜 러닝(사회적 학습) 이론은 원래 심리학에서 앨버트 반듀라(Albert Bandura) 등이 주장한 학습 이론인데, 요즘에는 소셜 러닝이라고 하면 실용적으로 소셜 미디어나 협업 툴을 이용한 집단 학습의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회사 밖에서 소셜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기업 내에서의 소셜 미디어에 대해서는 아직 호의적인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은 것 같다. 소셜 플랫폼에서 사람들이 활동하는 것을 학습이라고 하면, 기존 기업 교육 종사자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지금까지 통제하고 주도해왔던 회사 중심의 교육 서비스를 위협한다고 느끼게 된다. 게다가 정보보안 부서에서는 회사에서 꺼려하는 정보가 여과 없이 내부에서 유통되거나 외부로 새어나갈 것이라고 걱정하고, 사내 법률가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이디스커버리(e-discovery)와 같은 법률적인 위험성을 경고하고, 조직문화 담당자들은 민감하고 검증되지 않은 소식이 일파만파 퍼져나갈 것이라고 걱정한다. 기존에 지식 경영(knowledge management) 활동을 통해 회사가 구성원들에게 각종 회유와 협박(?)을 가하면서 지식을 공유하라고 했는데도 장기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던 수많은 회사들은 “그것 안 된다”라고 미리 방어벽을 치거나, 아니면 지식 경영에서 실패했던 하향식(top down) 접근을 반복하기 쉽다. 재미있는 것은 엔터프라이즈(Enterprise) 2.0 구현에 가장 적극적일 것 같은 정보기술(IT)쪽 부서에서도 투자수익률이 검증되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영자들은 이메일 읽기에도 바쁜데 소셜은 무슨 소셜이냐며, 소셜 미디어에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시킨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부정적인 시각에 방점을 찍을 것이다.

이처럼 일반적인 회사에서 소셜 러닝을 도입하려면 사방에 온통 회의론자들로 둘러쌓인 척박한 환경을 극복해나가야 한다. 특히 산업 특성상 자율보다 규율이 더 중요시되는 금융업, 국방 산업, 제조업, 공공 기관이라면 더욱 열악한 조건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모든 장마다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응대하는 법(Responding to Critics)이라는 절이 있어서 가장 흔한 비판에 대해 어떤 논리로 대응할 것인지 설명해주고 있다. 이런 대응 논리를 잘 익혀도 아직 “공공의 자산으로서 웹”의 가치를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소셜”의 가치를 “기업”의 성과 창출과 연결해 설득하기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운영의 효율성(operational efficiency)과 비용 절감, 자동화, 구조화에 사로잡힌 기존의 정보기술자들은, 일견 무질서해보이지만 활동 데이터가 쌓이면서 스스로 구조화되고 프로세스가 만들어져가는 소셜 웹을 혼돈 상태(chaos)로 바라본다. 많은 회사에서는 프로세스를 먼저 세우고, 그것에 따라 정보 시스템을 설계한다. 그리고 그런 정보 시스템을 잘 만들면 기존에 하던 일들이 자동화되고 그 결과 들어가는 돈이 절약되고, 투입되는 인원이 줄어들고, 시간이 절약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세상 일이 모두 잘 짜여진 프로세스에 맞추어 자동화될만큼 어디 그렇게 단순한가. 점점 더 많은 일들은 단순히 잘 짜여진 프로세스나 좋은 선례(best practice)를 그대로 따라한다고 해서 똑같은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을만큼 복잡하고 다차원적이다. 따라서 자동화와 프로세스 효율화 논리만으로는 복잡한 세계에 대응하기 위한 소셜 웹의 패러다임을 이해하기 어렵다. 소셜 웹의 시작은 무질서하고 아무런 체계도 없어 보이지만, 시간이 흘러가고, 활동 데이터가 축적되면 보이지 않던 구조가 드러나고, 없었던 프로세스가 더 현실적으로 생겨나고, 객체나 사람들간의 관계가 아주 소중한 데이터로 다시 활용된다.

고도로 발달한 인간의 인지 활동(예를 들면, 사물 인식, 글자 인식, 얼굴 인식, 의사 결정 등)을 모사하기 위해 if-then-else로 경우의 수를 규명하고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인지 활동은 뇌의 복잡한 병렬 분산 처리(parallel distributed processing)의 결과로 생겨나기 때문이다. 아주 단순화하면 인공지능을 구현하는 접근법에도 두 가지가 있다. 어느 정도 한정된 데이터와 비교적 의사 결정 규칙이 명확한 곳에는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과 같은 규칙 기반의 심볼리즘(symbolism) 접근을 하는 반면, 아주 단순한 규칙만으로 시작하되 컴퓨터 스스로 학습하면서 지능이 발달하여 수행율이 향상되는 신명망(neural network)을 이용한 접근 방법도 있다. 과거의 정보기술의 패러다임이 다분히 심볼리즘에 가까웠다면, 소셜 웹의 기저 사상은 신경망과 같은 연결주의(connectionism) 쪽에 있는 것 같다. 따라서 과거에 기업 혁신을 주도했던 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TQM(total quality management), 식스 시그마(6 sigma)와 같이 프로세스와 규칙 지향적인 툴과 방법론에 익숙해진 시각에서 바라보면 엔터프라이즈 2.0과 소셜 웹을 통한 혁신은 초기에 성과도 보이지 않고, 실체가 없는 무질서한 “한 때의 유행(fad)”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책에서는 소셜 러닝이 아주 특별하고 새로운 교육 방식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실제 일하면서, 또 일상 생활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협업하면서 배우는 가장 자연스러운 학습 방식을 기술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많은 부분 우리는 자연스러운 협력과 다른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때로는 우연에 의해(serendipity), 그리고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비공식적으로 더 많이 학습한다. 우리가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전문성이 향상되고, 여러 가지 비즈니스가 얽혀서 더 복잡해지고, 직급이 올라가 더 복잡한 의사 결정이 필요할수록,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전통적인 교육은 효용성이 떨어진다. 왜냐하면 회사 교육 부서에서 만들어내는 교육은 투자대비 효율성이 높고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부족한 역량에 대한 것만을, 한참 시간이 지난 다음에 다루기 때문이다. 특수하고, 전문적이지만 수요자가 없는 교육 영역은 회사에서 제공할 수 없다. 게다가 회사에서 제공하는 교육은 이미 해법이 알려진 문제에 대한 검증된 정답을 알려줄 뿐이다. 미래에 새로운 문제가 생겼을 때에 우리는 그것을 즉시 해결해야 하는데, 보통 회사의 교육은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따로 강의장으로 가지 않아도,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학습하고, 성과 향상을 도와주는 여러 가지 방법(EPSS, Electronic Performance Support System)을 통해 실질적인 학습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구호만 있었다. 그것이 2000년대 초반에 회자되던 워크플레이스 러닝(workplace learning)이다. 그러나 그런 구호를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회사 교육 부서에서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웹 기술의 발달로 자연스러운 협업과 커뮤니케이션을 지원해주는 도구가 많이 있다. 그리고 그런 기술을 활용해 인간 본연의 자연스러운 학습을 촉진하고, 학습 결과가 실질적인 조직의 성과로 이어지도록 하자는 것이 바로 “소셜 러닝”이다.

책에서는 소셜 러닝의 필요성과 커다란 사회 변화를 맨 앞장에서 언급한 다음, 딜로이트 회사의 디 스트리트(D Street)라는 시스템을 예로 들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해 소개한다. 사실 과거에 많은 회사들이 CoP(Community of Practice)를 운영해왔지만, 자신있게 성공적이라고 할 만한 곳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든다. 그래서 ‘커뮤니티’라는 말에 약간 거부감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2.0 방식의 커뮤니티는 과거의 인위적인 강한 유대(strong bond)를 토대로 한다기보다는 필요에 의해(ad-hoc) 일시적으로 생성되는 약한 연결(weak tie)을 기반으로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카페나 구글 그룹스같은 서비스 모형을 회사 내에 학습 목적으로 비슷하게 도입해 운영하려고 하면, 아무리 인센티브를 주고 별짓을 해도, 대부분은 초기에 반짝하다가 흐지부지 되기 쉽다. 과거의 커뮤니티에서 자료와 데이터가 더 중요했다면 새로운 커뮤니티에서는 그런 자료와 데이터를 만들어낸 사람이 누구인가가 더 중요하다. 데이터를 만들어낸 사람의 신뢰성이 어떻게 드러나고 축적되게 할 것인가가 관건인 것 같다.

두 번째로 소개하는 주제는 비디오를 위주로 한 스토리텔링이다. 이 부분이 가장 공감이 가는 장이었다. ASTD 최우수 교육 사례로 여러 번 소개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에서도 Sun Learning eXchange라는 비디오 플랫폼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사용자들이 직접 만든 비디오가 결국에는 기존 교육 부서에서 만든 콘텐츠를 압도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회사 안에 유통되는 유튜브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비디오를 만드는 작업이 점점 쉬워지고 있고, 회사의 업무가 다원화되고, 특수한 전문가의 지식을 비교적 쉽게 담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비디오 플랫폼은 매우 강력한 소셜 러닝의 기반이 될 것이다.

세 번째는 마이크로블로그를 통한 소소한 활동, 진행 상황, 지식, 팁, 아이디어 공유였다. 마이크로블로깅은 우리 회사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도 비교적 많이 시도해본 것 중에 하나이다. 한국 사람들은 기업용 마이크로블로깅 사이트에 비교적 비공식적이고 가벼운 일상의 이야기를 올리는 경우가 많았고, 이것을 조직 문화 관점에서 상하간에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해주는 도구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에 다른 문화권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마이크로블로깅을 뉴스나 정보의 공유의 장으로 쓰거나, 물리적으로 또는 업무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부서 이기주의에 빠진 사람들을 좀 더 큰 협업의 장으로 끌어내서 실질적인 업무의 문제를 해결하는 용도로 쓰려는 경향성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마이크로블로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꺼내는 이야기가 일상적인 잡담을 나눌만큼 한가하냐는 물음이다. 누구든 자신의 이메일 트래픽이 많아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메일이 많아지면 그만큼 비생산적으로 바빠진다. 마이크로블로그를 이용해 사내 협업을 하면 이메일 트래픽의 일부를 줄일 수 있고, 개인의 메일함에 모든 것을 정리, 보관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다. 최소한 인스턴트 메신저로 남에 대한 험담이나 잡담을 하는 것보다 공개된 마이클로블로깅은 훨씬 더 생산적이고 건전하며, 예상치 못한 혁신의 도구로 쓸 수 있다.

네 번째는 위키를 이용한 집단 지성의 활용인데 엔터프라이즈 2.0 책에서도 나왔던 미국 정보기관의 위키인 인텔리피디아(Intellipedia)와 이름도 비슷한 인텔피디아(Intelpedia) 예를 아주 자세하게 소개해준다. 아마 요즘에는 대부분 회사에서 크고 작은 위키가 없는 곳이 없을텐데 이것도 은근히 생각보다 잘 안 되고 장벽이 많다. 여전히 사람들이 이메일을 통한 비효율적이지만 익숙한 협업을 선호한다는 것이고, 위키에 무엇을 어떻게 공유해야 할 지 모르며, 내가 아는 것을 위키와 같이 공공의 장소에 공유함으로써 나만이 가진 차별화된 가치가 바닥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한 가지 한국적인 특성을 더하면 사람들이 파워포인트로 슬라이드는 잘 만들지만, 위키와 같이 위계적인 제목을 갖는 전형적인 정보성 문서 작성에 서툴고, 사실에 기반하여 이야기를 기술하는 것, 즉 이런 형태의 스토리텔링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몇 개의 아주 성공적인 활용 사례를 보여주면 상당히 호기심을 보이고 거부감이 적은 것이 또한 위키이다.

다섯 번째로 소개되는 것은 시뮬레이션, 게임, 가상현실 등을 활용한 교육이다. 즉, 위험한 상황이나 직접 실험하는 데에 많은 돈이 들어가는 상황을 재현해서 그 안에서 어떤 기술을 익히게 할 목적으로 현실 세계와 최대한 유사하며, 상당히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도 혼자 학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서로 “소셜하게” 배우게 하는 것이다. 사례로 셰브론(Chevron)사의 정유소 시뮬레이션 등이 소개되었는데, 아이비엠(IBM)에서도 상당히 많이 활용하고 있고, 과거에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에서도 원더랜드(Wonderland)라는 오픈 소스 가상 협업 툴을 지원했으며 내부적인 리더십 교육에 활용하였다고 한다. 내가 재미있게 느끼는 것은 우리 나라에서는 플래시로 구현할 수 있는 최상의 현란한 애니메이션은 다 동원해서 교육 콘텐츠를 만들지만, 정작 실제 상황과 유사한 복잡한 시나리오를 담은 시뮬레이션이나 게임은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현란하고 화려한 애니메이션이 학습자들을 더 몰입하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럿이 복잡한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시뮬레이션이 더 몰입적인 것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마지막 장은 “실제 대면 행사에서 소셜 툴의 활용(Connecting the Dots at In-Person Events)”에 관한 것으로, 컨퍼런스에서 백챗 채널(backchat channel)을 활용해 사람들의 참여 폭을 넓힌다든가, 실시간 비디오 중개를 한다든가, 소셜한 행사 위키 페이지를 제공하는 것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것도 우리 회사에서 비교적 많이 실험해보았고 비교적 저항이 덜한 분야이다. 준비에서 사후 지원까지 여러 가지 용도로 쓰게 되는 행사용 위키 페이지를 운용한다든지, 행사중에 의도적으로 백채널을 운용해서 의견을 받고, 기록을 남긴다든지, 집합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간단한 협업 툴(예를 들면, 실시간으로 협업적 글쓰기, 간단한 투표나 의견 조사, 위키를 이용한 조별 과제 수행 등)을 쓰는 것은 쉽게 시도해볼 수 있다.

이미 대세를 넘어 현실이 된 소셜 러닝에 대해 우리 나라 기업들은 아직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대신 스마트폰이나 모바일 기기에서 기존의 이러닝 콘텐츠를 그대로 옮겨와 엉뚱하게 “스마트 러닝(smart learning)”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것을 많이 보았다. 물론 즉시성과 접근 용이성 측면에서 모바일 기기의 활용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회사 교육 부서에서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다 만들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임직원들에게 인심 쓰며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전부인 시대가 점점 저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잘 꾸며진 16시간짜리 이러닝 콘텐츠를 보면서 혼자서 열심히 시키는 대로 학습하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회사에서 “필수” 교육이라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과정 종료일에 클릭, 클릭하며 페이지 넘기기에 바쁜 사람들을 무수히 봐왔다. 교실 수업에서는 항상 조별 실습도 시키고, 집단 과제도 주고, 토론도 시키고, 발표도 시키고, 좀 더 현업 일에 가깝게 하려고 액션 러닝(Action Learning)을 시도한다. 이런 집단의 욕구를 웹이라는 플랫폼에서 자연스럽게 일상화시키고 표면에 드러나게 해보자. 지금의 웹 기술은 그 정도를 지원할만큼 발전해왔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를 보고

영화 소셜 네트워크를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페이스북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우선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개념이 상당히 깔끔하지 못해서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것인지 혼란스럽습니다. 또 실제 세계에서 얼굴도 모르는 친구들로부터의 요청을 거절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덜컥 수락하기에는 노이즈에 대한 부담이 상당히 큽니다. 어쨌든 무섭게 성장하고 있고 구글을 능가하는 유일한 인터넷 플랫폼이 되어가는 페이스북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영화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인공인 마크 주커버그(Mark Zuckerberg)는 하버드 대학교의 문제 투성이인 심리학과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마음먹고 재미있겠다고 생각한 일이면, 학교의 규정, 동료나 친구에 대한 예의, 사회적인 통념 따위는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괴짜인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정말로 “쿨”한 것을 처음으로 소개하고, 그것이 예상치 못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호”와 지지를 받게 되고, 실제로 기존의 일하는 방식이나 소통하는 방식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주는 것! 그것이 마크가 페이스북을 통해 만들어낸 것입니다. 반면 공동 창업자인 그의 친구 에듀아도 사브린(Eduardo Saverin)은 아주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사람으로 영화에서 그와 갈등을 빚습니다. 아무리 쿨한 사이트여도 당장에 광고를 끌어오지 않으면 돈벌이가 안 된다는 아주 현실적인 생각이지요. 그에 대해 냅스터의 창업자인 숀 파커(Sean Parker)는 오히려 당장의 돈보다는 더 쿨하고 더 멋진 서비스를 만드는 것에 더 재미있어 하는 사람으로 마크가 페이스북을 다른 대학과 다른 나라에 크게 확장하는 데에 도움을 줍니다.

영화를 보면서 현실에 있는 사람들의 캐릭터와 영화의 캐릭터가 자꾸 비교되었습니다. 제 주변에도 숀 파커같이 재미있고 쿨한 가치를 추구하고, 크고 거친 꿈을 꾸는 사람이 있고, 반면에 현실적인 걱정으로 가득차있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항상 바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잘 어울리면 정말 멋진 시너지가 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가치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기 쉽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마크나 숀처럼 큰 꿈을 꾸고 싶고, 재미있으면서도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큰 일을 직업으로 삼아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역시 당장의 현실적인 문제로부터 그리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금년 초에 미국 실리콘 밸리(즉, 팔로 알토,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 등)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오라클이 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구글, 기업용 협업 시스템으로 유명한 자이브소프트웨어, 소셜텍스트 등의 회사 사람들을 만나고 또 팔로 알토 시내를 돌아다니며 전세계 사람들을 열광시킨 여러 가지 혁신의 근원지는 공기가 어떻게 다른지 느껴보려고 했습니다. 짧은 기간에 그것을 알기도 힘들었고, 말로 표현하기도 쉽지 않겠지만, 굳이 그것을 압축해서 표현한다면, “재미”와 “열정”이었습니다. 썬과 같이 큰 회사나, 소셜텍스트와 같이 작은 회사나 모두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해 너무나 재미있어 하고, 자기들이 만들어내는 가치를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나눠주고 싶어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재미있어하고, 다른 사람들이 별로 시도해보지 않았지만 그 일이 앞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고 모험을 하는 스타트업 기업들에게 투자하는 앤젤 투자자들이 미국 사회에는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벤처와 창업 붐이 있었으나, 성공하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대기업 위주로 짜여진 우리 나라의 경제 시스템의 위계 질서에 부딪쳐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저도 큰 기업의 울타리 안에서 모험을 꺼려하고, 기존 질서만을 옹호하는 늙수그레한 중견 관리자가 되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무탄트 메시지, 문명 사회로부터 잠시 외도를

무탄트 메시지무탄트 메시지별 다섯 개 중 넷
말로 모건 지음, 류시화 옮김 / 정신세계사

책을 통해 무탄트 메시지를 접할 수 있게 해 준 윤문식 선생님에게 먼저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호주 대륙의 가운데에는 온통 사막으로 덮여 있어서 대부분의 도시들은 해안가를 중심으로 발달해있다. 그런데 미국의 의사 말로 모건이라는 사람은 정말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호주 대륙을 빈 손, 맨발로 건너게 된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황량한 사막, 도대체 인간이 어떻게 살아갈까 싶은 그 오지(outback)에서 필요한 식량과 주거지를 얻으며, 어떤 동식물도 멸종 위기에 빠뜨리지 않고, 어떤 숲과 강도 파괴하지 않고, 어떤 오염 물질도 자연에 내놓지 않은 오스틀로이드 족(참사람 부족)이 아주 오랜 세월을 살고 있었다. 인간 뿐만 아니라 동물, 나무,물과 바람, 대지가 다 형제라고 믿는 그들은, 자연의 형제들을 마구 훼손하고 파괴하는 것이 결국에는 자신을 파괴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현대 문명인들을 돌연변이(무탄트)라고 부른다.

사막을 횡단하는 동안, 먹을 것을 간절히 원하면 신은 그들에게 먹을 것을 보내주었고, 물을 간절히 원하면 자연은 꼭 필요한 만큼의 물을 제공해주었다. 그들은 자연에 존재하거나 발생하는 것에는 우연이 없으며 다 그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신이 이 세상에 사람을 내보내고, 동물과 식물을 내려보내고 거두어들이는 데에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식량을 필요로 할 때에 나타나준 도마뱀, 낙타, 새, 딩고, 개미, 개구리, 풀과 나무에게 그들은 진심으로 감사와 경의를 표하고, 딱 필요한 만큼만 취한다.

현대 문명인들은 기계와 물질의 힘을 빌어 엄청난 생활의 편의를 얻었지만,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었을지 모를 영감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문명인의 눈으로는 오지에 사는 한참 미개한, 야만인들에게서 무얼 배울 수 있겠느냐고 무시할 수 밖에 없지만, 그들은 진정으로 창조적이고, 평화롭고, 또한 영적인 종족이었다. 이 부족들은 이제 점점 기온이 올라가고, 오염되어 가는 지구에서 더 이상 자손을 갖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문명인들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겨 사막으로 사막으로 쫓겨가다가 사막에서 행해지는 핵실험의 희생자가 되기도 한 그들은, 부족에서 가장 젊은 사람이 생을 마감하는 날, 문자도 없었지만 창조적이고 평화로운 삶을 오랫동안 간직했던 지혜의 역사를 마감하게 된다.

우리가 이제까지 물질의 풍요함에 젖어 놓치고 있었지만 매우 소중한 것들을 그들은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 메시지의 전달자로 백인 여의사 말로 모건을 선택하였다. 그들의 삶을 마감하면서 현대인들에게 남기는 그 메시지에는 같은 별에 사는 인류에 대한 진정한 동료애가 담겨 있다.

긍정적인 전염, 유머가 인생을 바꾼다

유머가 인생을 바꾼다 책표지유머가 인생을 바꾼다별 다섯 중 별 셋 김진배 지음/다산북스

요즘 여러 권의 책을 아주 조금씩 조금씩 보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유머가 인생을 바꾼다”는 책인데, 권해준 분은 바로 우리 어머니! 강의를 종종 하니까, 유머를 많이 익혀놓으면 좋지 않겠냐면서 읽어보라고 주셨다. 사실 이런 종류의 책을 그닥~ 좋아하진 않지만, 그냥 가볍게 보기로 했다. (웃찾사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도 내가 가장 싫어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하나이다. 코미디 영화나 드라마는 무척 좋아하지만…) 목적이 좀 애매했었다. 유머를 발휘하는 기법을 소개한 책인지, 아니면, 써먹을 수 있는 유머의 모음집인지, 유머 예찬론인지, 아니면, 긍정적인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인지… 모두 조금씩 들어가 있었다.

웃음과 긍정적인 기대, 자세가 자신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실제 심리학의 연구 결과는 꽤 있다. 잘 알려진 피그말리온 효과부터 코미디 프로를 보고 난 후에 수학 문제를 더 잘 푼다든지 하는 그런 연구 결과들. 그러니 긍정적이고 밝은 삶의 자세를 어떠한 상황에서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결코 손해볼 일은 없는 것 같다.

책에 나온 많은 내용중에 가장 공감이 갔던 부분은,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무표정 = 정상적 표정”이라는 등식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처음 외국(호주)에 갔을 때 호주 사람들은 눈만 살짝 마주쳐도 미소를 지어 보이거나, 윙크를 하던 것을 잊을 수 없다. 그래 기왕 마주칠 거면, 살짝 웃어주고, 또는 가볍게 인사도 나눠주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데.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는 사람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층번호만 쳐다보거나, 땅바닥만 보거나, 괜히 신호도 못 받는 휴대 전화 꺼내서 문자 체크하는 척 하거나, 심지어 그냥 눈을 감을 필요 있을까? 다른 사람들과 마주칠 때 무표정은 때로는 정상적인 것이 아니고, 화나거나 못마땅하다는 뜻을 전달하는 것일 때도 있다. 먼저 웃고, 먼저 인사하면 기분도 훨씬 좋을텐데…

몇 주 전에 중동,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과 수업을 했던 적이 있다. 그들이 그렇게 낙천적이고, 긍정적이고, 배움에 대해 열정적이고, 다양성과 다른 문화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인지 몰랐다. 여유있고 유머가 넘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그렇게 즐겁고 유쾌할 수가 없었다. 이런 것을 긍정적인 전염(positive epidemic)이라고 해야 할까?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과 유쾌함을 전염시키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봐야겠다.

17세기 네덜란드 명화로의 느린 여행: 진주 귀고리 소녀

진주 귀고리 소녀 책표지진주 귀고리 소녀10점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서점에 들렀다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재미있어 보여 그냥 집어든 책,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를 읽었다. 네덜란드에는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고흐나 렘브란트와 같은 화가 뿐 아니라 이 미묘한 그림을 비롯해 단지 35편만의 작품을 남긴 요하네스 베르메르라는 화가가 있었다. 아름다운 파란색과 노란색 천으로 머리를 감싸고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을 한 눈이 큰 소녀를 그린 그의 이 그림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머리에 쓴 두건으로 보아서는 귀부인도 아니고, 진주 귀고리를 한 것으로 보아선 하녀도 아니며, 배경도 없이 까맣고 어두운 바탕에 왼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리고 미스테리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그림에 대해 슈발리에는 생명을 불어넣었다.

책 속에는 진주 귀고리 소녀를 비롯해 스물 세 점의 베르메르 그림이 들어있다. 음악은 아직도 나에게 삶의 일부로,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 있지만, 그림이나 회화는 사실 먼 나라 이야기로 남아 있었다. 게다가 디지털 카메라가 널리 보급된 요즈음엔 카메라 각도를 이리 잡아보고 저리 잡아가며 원하는 그림을 얻는 것이 베르메르처럼 지루하게 몇 개월에 걸쳐, 물감을 만들고, 모델의 위치를 바꿔가며 한 개의 그림을 완성하는 것보단 훨씬 더 익숙한 일이다. 바로 그런 점이 이 책을 흥미롭게 만든 점이었다.

17세기 네덜란드 델프트라는 작은 도시를 중심으로 한 화가와 모델, 그리고 그들 주변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미묘하고 느린 감정의 변화가 생생하며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과학 기술이 발달한 현시대의 독자로서 400년도 더 지난 유럽 작은 마을의 모습, 화가의 그림처럼 좀처럼 더디게 진행되는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투명 인간이 되어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대부분의 소설이 그렇듯이 초반 몇 페이지에서 배경을 설명하거나 등장 인물이 여럿 등장할 때 인물들의 이름이 헷깔리고 배경이 얼른 눈에 잡히지 않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주인공 그리트의 이야기에 점점 깊이 빠져들었다. 그래서 퇴근 후에 조금씩 시간을 내서 읽었는데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책을 다 읽고 덮기 전에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오직 도둑과 아이들만 뛰는 법이다.

이런 믿음을 가진 그리트가 왜 아우더랑언데이크 가를 달려 내려올 수 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아름답고 신비한 진주 귀고리 소녀 그림에 담긴 비밀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마지막 부분에 저택의 큰 마님, 마리아 틴스가 한 말이, 누구에게도 설명하기 힘든 그리트의 삶을 인상적으로 묘사해준다.

그래, 인생이란 한바탕 연극과 같은 거야. 자네도 오래 살다 보면 놀랄 일 따위는 없을 걸세.

슈퍼맨과 이현석

수퍼맨이었던 사나이 영화의 한 장면: 휘날리는 빨간 망토를 입고 지붕 위에 서있는 주인공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영화를 봤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작정을 하고 봤다기보단 무작정 영화관에 가서 시간이 되는 영화를 고른 결과였지요. 영화로서 그다지 박진감 넘치는 재미는 없었습니다만 나름대로 흥미로운 소재를 다룬 영화였습니다.

‘슈퍼맨’, 미국식 발음으로 ‘수퍼맨’은 남자 애들이면 한 번 쯤 꿈꾸어봤을 법한 영웅입니다. 어렸을 때 수퍼맨 시리즈를 참 재미있게 봤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망또를 휘날리며 멋지게 하늘을 날고, 눈에서 광선이 나가고, 입에서 세찬 바람이 나가고,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쏜살같이 날아가 착한 일을 하는 수퍼맨! 이번 숭례문 화재에 수퍼맨이 날아왔더라면 하는 아쉬움까지 생깁니다. 수퍼맨과 같이 정의로우면서 힘센 사람을 우리는 갈망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의 수퍼맨은 진짜가 아니었지요. 단지 자신이 수퍼맨이었다고 믿는 과대망상에 빠진 한 정신 장애인일 뿐입니다. 과대망상은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정신 질환의 증상입니다. 지금까지 다른 영화에서 다중 인격 등 현실적으로 찾아보기 어렵지만 보다 드라마틱한 이상 행동을 다루었다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이현석은 과장되기는 했지만 꽤 그럴 듯한 인물입니다. 사실 그는 과대망상을 가졌지만 남에게 해를 끼칠만큼 위협적이지는 않습니다. 만약 우리 사회가 이렇게 고도로 문명화되지 않고, 사람들이 여유있게 원시적인 생활을 즐긴다면, 이런 사람도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이웃으로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훨씬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며, 사람들의 이해 관계가 얽혀있습니다. 자동차나 전기와 같은 문명의 전리품들은 생활의 편의를 더해주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인한 사고의 위험도 커졌습니다. 이런 문명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격리되기 마련이지요. 주인공은 정신 병원에서 환자들을 다루는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을 ‘하얀 악마’라고 칭했었지요. ‘하얀 악마’는 조금이라도 ‘정상적’이지 않는 사람들을 ‘이상적’이라고 규정하고, 그들을 ‘치료’해야만 하얗고 깨끗한 세상이 된다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는 모습이 점점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깨끗이 치워야 하거나,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하거나, 또는 바꾸거나, 고치거나, 소독하거나, 때로는 박멸해야 합니다. 그렇게 치료받아 이현석으로 돌아온 ‘수퍼맨’은 과연 행복했을까요? 비록 허구이지만 자신이 수퍼맨이라는 믿음이 기쁨을 주고, 에너지를 준다면, 약물로 그의 에너지와 기쁨의 원천을 빼앗아가버리는 것이 반드시 옳은 일일까요? 혹시 우리는 그런 비정상적인 것, 비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되돌려야 깨끗해진다는 강박적인 집단 결벽증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까요?

영화에서 남을 돕는 수퍼맨과 광인 이현석은 동일 인물입니다. 즉, 전적으로 악한 인물, 전적으로 선한 인물, 전적으로 이상한 사람, 전적으로 옳은 사람, 전적으로 나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나름대로 삶의 방식이 있고,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만든 엄격한 잣대와 숨쉬기 힘든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 또는 다른 기준으로 바라봐야만 이해가 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그런 사람들은 우리가 기다리는 수퍼맨이나 선한 사마리아 사람같이 좋은 사람의 모습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하얀 악마’가 되어 마지막 남은 ‘광인’을 ‘계도’하려고 매달리지 않고, 조금 여유있게, 너그럽게 바라보면, 영화속 희정이(어린 아이)처럼 이현석과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기대와 설렘으로 만드는, 용기!

용기이러닝 담당자 교류회에 갔다가 책을 하나 받았습니다. 원래는 유영만 교수님이 특강을 하시기로 되어 있었는데 일정이 변경되고 대신 이 “용기”라는 책을 얻어왔습니다. 보아하니 두께도 얇고, 그림도 많고, 읽기 쉬울 것 같아서 지금 읽고 있는 책 두어 권을 다 덮어버리고 요걸 먼저 읽게 되었습니다. 우선 저자는 교육공학을 전공하신 분인데 이런 종류의 대중 서적 집필이나 대중 강연을 비교적 많이 하신 분입니다. 그중에 몇 번 들어봤는데 솔직히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강연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책을 대할 때 굳이 비판의 쌍심지를 치켜들고 보는 대신에 되도록이면 겸손하게, 나의 머리와 가슴을 비워두고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나영재와 오대범이라는 두 명의 인물이 나와서 대화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인물의 작명도 그렇고, 실생활에서 있을 수 있는 전형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그것을 해결해주는 튜터를 등장시키는 것도 모두가 마치 우리 나라에서 많이 보는 스토리텔링식의 이러닝 과정을 책으로 옮겨 놓은 것 같습니다. 요즈음 이러닝 하는 사람들은 “스토리텔링”이 화제 거리입니다. 물론 이건 이러닝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다른 자기 계발 서적들과 달리 스토리텔링식으로 책 전체를 구성한 것은 참 재미있었습니다. 비록 스토리가 아주 흥미진진하진 않았지만 말이죠.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7가지 용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저도 해보지도 않고 미리 걱정하고, 해보지 않은 것 때문에 더 후회하는 어리석음을 많이 범해왔습니다. 누구나 현재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미래에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선택이란 행동으로 옮겨야 의미가 있습니다. 재고 또 재는 신중함도 중요하지만 그러다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간 뒤 후회하면 뭣하겠습니까? 행동으로 옮기려면 자신감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신감과 용기는 불확실한 세상과 끝없이 일어나는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책 속에서 오대범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세상이 모두 확실하게 밝혀져 있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그만큼 재미없는 인생도 없을 거야.

No-Where! 짙은 안개 속엔 나의 길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Now-Here! 바로 지금 여기가 나의 길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넘치는 유쾌함, 헤어스프레이

헤어스프레이주중에 하루 휴가를 냈습니다. 그동안 밀렸던 은행 일들을 끝내기 위해 시외 버스까지 타고 왔다갔다 하며 오늘 하루만 은행을 다섯 군데나 돌았습니다. 그렇게 모든 일을 마치고 오산에 돌아왔는데 웬지 그냥 집에 들어가기엔 아까운 것 같아, 영화관에 들러 시간 되는 것으로 선택한 영화가 바로 헤어스프레이! 포스터를 보아하니 웬 촌스러운 여자가 전면에 웃고 있는 것이, 분명히 삼류 코메디일거라고 생각하고 들어갔습니다. 언제나처럼 오산의 영화관은 자리가 남아돌기 때문에 가장 보기 좋은 자리에 턱 하니 앉아서 느긋하게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드디어 짠~

“안녕, 볼티모어(Good morning, Baltimore)”라는 노래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게 가만히 듣고 있자니 상당히 기분 좋게 만들고, 귓가에 착 달라붙습니다. 음, 심상치 않은 영화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죠.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 통쾌, 상쾌한 춤과 음악들이 멈추질 않습니다. 주인공은 트레이시는 외모로는 볼품없는 뚱보 소녀이지만, 낙관적이고, 낭만적이고, 재능이 넘치며, 희망적인 미래에서 현재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벨 소리를 들을 수 있고(I can hear the bell), 불합리한 관행과 관습을 바꾸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가이자, 탐험가이고, 혁신주의자입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복고적인 의상과 머리 모양, 그리고 춤과 노래, 사람들의 대화, 흑백 텔레비젼를 통해 현존하는 세계 최대 강국인 미국의 옛날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1960년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the 60’s)”라는 재미있는 노래를 통해 그 때에 미국이 변화의 소용돌이에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21세기 시각으로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 그 당시에는 불가능했었더군요. 흑인과 백인이 사랑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거니와, 흑인과 백인이 함께 TV에 나올 수도 없고, “검둥이의 날(negro day)”이 지정되어 그 때엔 흑인들만 따로 TV에 나오는 참 어처구니 없는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불합리한 것들은 평등한 세상이 미래이고 대세라는 믿음을 가진 주인공과 흑인들의 투쟁에 의해 바뀌어갑니다. 아마 몇 십년이 지나서 우리가 현재를 뒤돌아보면, 우리도 똑같은 생각을 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가 되면 지금은 이단자나 몽상가로 찍히는 사람들이 미래에는 선구자(frontier)로 인식될지도 모르지요.

아무튼 기대하지 않았던 수작이었습니다. 영화 보는 내내 재미있고, 유쾌하며, 영화 보고 나면 스트레스가 확 날아갑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로 만들어서인지, 노래가 참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노래가 영화를 지배하다보니 영화 속 대사, 메시지, 표현이 함축적이고, 비유적이며, 위트있고, 감동적인 것들이 많습니다. 어디서 노래 가사나 영화 대본을 구하고 싶어집니다. 아직 영화의 장면들이 따끈따끈한 상태일 때에 몇 개를 까먹기 전에 얼른 정리해보았습니다.

볼티모어 꽃게 아가씨(Miss Baltimore Crabs)
이것은 그냥 기억나는 재미있는 영어 표현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지역 특산물과 연계해서 무슨 지역 고추 아가씨 선발 대회가 있었던 것처럼, 미국에서는 볼티모어 꽃게 아가씨라는 표현을 쓰나보네요.
사랑이 없는 인생은 여름이 없는 계절이고, 드러머가 빠진 록큰롤이다 (Without love, life is the season without summer, rock ‘n’ roll without drummer.)
그 밖에도 사랑이 없는 삶이 뭐와 같다가 몇 개 더 있었는데, 이게 가장 기억에 남는군요.
체크 무늬를 만들자! (Do the checkerboard!)
이건 흑인 시위대가 피켓에 써놓은 메시지 중에 하나입니다. 백이 있으면 흑이 있어야 조화가 된다는 참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또 하나 재미있었던 표현은 “TV는 흑과 백이 다 있다 (TV is black and white)”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이렇게 안하고 “TV has colors!” 정도로 쓰지 않았을까요? ㅋㅋ
당신은 나의 영원한 사랑! (You are my timeless to me.)
주인공 트레이시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부르는 노래 가운데 나오는 가사입니다. 영원하다는 표현에 참 가슴이 찡하게 만드는 노래였습니다.
이것이 미래다! (This is the future!)
흑인과 백인이 함께 어우러져 신나게 춤추는 것이 생방송으로 나가는 것을 멈추라고 말하는 방송국 매니저 벨마에게 쇼 호스트인 코니가 거절하며 내뱉은 짧은 한 마디!
빅 사이즈 전문 옷가게 (hefty shop?)
정확한 표현이 잘 기억나질 않는데, 아무튼 헤프티만 생각나네요. 그런 가게가 따로 있다는 것도 재미있고, 헤프티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온라인에서 온통 어거스트 러쉬가 화제이던데… 아직 못 봤습니다. 그러나, 헤어스프레이! 강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