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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빙 빈센트를 보고

동서고금, 음악과 미술 등 모든 예술 장르를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 한 명을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빈센트 반 고흐를 꼽을 것이다. 그를 처음 접한 것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주셨던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30권인가 50권짜리 명화집을 통해서였다. 화가별로 정리된 명화집에서는 고전적인 앵그르, 다비드에서부터 낭만파의 거장 들라크루아 (그 책의 표기로는 드라크라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수 많은 인상파 화가들, 마네, 모네, 드가, 세잔, 고갱, 쇠라, 그리고 어린 시절 꼬마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고흐의 대표적인 그림들이 해설과 함께 정리되어 있었고, 맨 마지막은 뭉크 등을 거쳐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렸을 때에는 그저 다른 화풍의 그림들을 보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렇게 막연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많은 화가 중의 한 명이었던 고흐가 나의 가슴 속에 들어온 두 번의 계기가 있었다. 한 번은 2주 동안 네덜란드로 출장 갔을 때, 반 고흐 미술관에 가보았던 것이었다. 사실 나는 그 때까지 렘브란트, 몬드리안과 함께 고흐가 네덜란드 사람인 것도 몰랐었다. 내 기억에 그 미술관에 고흐의 작품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흐라는 작가와 그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첫 번째 계기였음은 분명하다.

두 번째로 그를 더 강렬하게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살아있는 동안 단 한 점의 그림만을 팔 수 있었던 고흐는 평생 가난과 고독에 시달리며 살았지만, 맑은 영혼을 소유한, 깊이 고뇌하는, 그리고 자연과 인간, 노동에 대해 진실한 존경을 보여주었던 위대한 예술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가로서 그는 그림을 통해서 그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고 하였다. 그의 그림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하고, 라이브하고, 다채롭고, 역동적이다. 하지만, 그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들을 통해서, 나는 내가 그림에서 충분히 보지 못했던 그의 생각, 삶에 대한 태도, 조금 더 깊은 예술가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 이후 그에 대한 노래, 돈 맥클린(Don McLean)의 빈센트는 가장 좋아하는 팝송 이 되었고, 고흐의 노란 해바라기 그림을 배경으로 한 우산을 산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존경과 팬심(?)의 표현이었다.

어제 그에 대한 영화, 러빙 빈센트를 보았다. 보고 싶은 시간대에 세 편의 영화가 있는데, 뭘 보겠냐는 아내의 질문에 나는 이 영화를 보자고 했는데, 막연히 고흐에 관한 영화겠거니 하고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가서 보게 되었다. 영화 시작할 때 나왔다. 100여 명의 화가들이 참여해 직접 그림을 그렸다고. 그리고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흐의 화풍을 재현한 화가들의 그림들이 초당 12 프레임의 애니메이션으로 진행되었다. 책 속에서, 작품집에서 정지되어 있던 고흐의 그림들이 꿈틀대고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의 그림 속의 인물들이 고개를 돌리고, 웅크리고 앉았던 사람이 일어서며, 들판을 달리던 기차가 실제 연기를 뿜어내고 경적을 울렸으며, 그림 속의 등불이 아른거리고, 밤하늘의 별이 휘둥그렇게 빛을 내뿜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가슴이 뛰었다. 특히, 가셰 박사와 아르망의 대화 장면은 마치 고흐가 만든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만큼, 라이브한 인물과 배경이 아름다웠다.

고흐 인생의 마지막 거처인 프랑스의 오베르 쉬즈 우아즈에서 그의 삶과 주변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절대적으로 침착한(absolutely calm) 상태였다고 고백했던 고흐가 6개월만에 자살로 삶을 마감한 것과 관련된 미스테리를 우편배달부의 아들, 아르망 룰랭이 추적하는 형태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영화를 통해, 그가 살았던 19세기 말, 100명의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서 프랑스 시골 마을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이 행복했다. 하지만, 위대한 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렇게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그 당시의 상황과 배경, 그리고 조금씩 드러나는 그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영화 보는 내내 무겁게, 안타깝게 마음을 짓눌렀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 크레딧과 함께 빈센트(Starry, starry night으로 더 알려진 노래) 음악이 나왔을 때에는 마치 나의 가까운 지인을 방금 떠나 보내는 것과 같은 슬픔이 밀려왔다.

고흐의 편지집에는 밑줄 쳐가며 기억하고 싶은 문구들이 매우 많았다. 그가 실제로 부치지 못한 마지막 편지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그래, 내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우리는 그가 생명을 건 작품들을 통해 위로받고 있는 것이다. Thank you, Vinc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