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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빙 빈센트를 보고

동서고금, 음악과 미술 등 모든 예술 장르를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 한 명을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빈센트 반 고흐를 꼽을 것이다. 그를 처음 접한 것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주셨던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30권인가 50권짜리 명화집을 통해서였다. 화가별로 정리된 명화집에서는 고전적인 앵그르, 다비드에서부터 낭만파의 거장 들라크루아 (그 책의 표기로는 드라크라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수 많은 인상파 화가들, 마네, 모네, 드가, 세잔, 고갱, 쇠라, 그리고 어린 시절 꼬마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고흐의 대표적인 그림들이 해설과 함께 정리되어 있었고, 맨 마지막은 뭉크 등을 거쳐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렸을 때에는 그저 다른 화풍의 그림들을 보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렇게 막연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많은 화가 중의 한 명이었던 고흐가 나의 가슴 속에 들어온 두 번의 계기가 있었다. 한 번은 2주 동안 네덜란드로 출장 갔을 때, 반 고흐 미술관에 가보았던 것이었다. 사실 나는 그 때까지 렘브란트, 몬드리안과 함께 고흐가 네덜란드 사람인 것도 몰랐었다. 내 기억에 그 미술관에 고흐의 작품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흐라는 작가와 그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첫 번째 계기였음은 분명하다.

두 번째로 그를 더 강렬하게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살아있는 동안 단 한 점의 그림만을 팔 수 있었던 고흐는 평생 가난과 고독에 시달리며 살았지만, 맑은 영혼을 소유한, 깊이 고뇌하는, 그리고 자연과 인간, 노동에 대해 진실한 존경을 보여주었던 위대한 예술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가로서 그는 그림을 통해서 그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고 하였다. 그의 그림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하고, 라이브하고, 다채롭고, 역동적이다. 하지만, 그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들을 통해서, 나는 내가 그림에서 충분히 보지 못했던 그의 생각, 삶에 대한 태도, 조금 더 깊은 예술가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 이후 그에 대한 노래, 돈 맥클린(Don McLean)의 빈센트는 가장 좋아하는 팝송 이 되었고, 고흐의 노란 해바라기 그림을 배경으로 한 우산을 산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존경과 팬심(?)의 표현이었다.

어제 그에 대한 영화, 러빙 빈센트를 보았다. 보고 싶은 시간대에 세 편의 영화가 있는데, 뭘 보겠냐는 아내의 질문에 나는 이 영화를 보자고 했는데, 막연히 고흐에 관한 영화겠거니 하고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가서 보게 되었다. 영화 시작할 때 나왔다. 100여 명의 화가들이 참여해 직접 그림을 그렸다고. 그리고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흐의 화풍을 재현한 화가들의 그림들이 초당 12 프레임의 애니메이션으로 진행되었다. 책 속에서, 작품집에서 정지되어 있던 고흐의 그림들이 꿈틀대고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의 그림 속의 인물들이 고개를 돌리고, 웅크리고 앉았던 사람이 일어서며, 들판을 달리던 기차가 실제 연기를 뿜어내고 경적을 울렸으며, 그림 속의 등불이 아른거리고, 밤하늘의 별이 휘둥그렇게 빛을 내뿜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가슴이 뛰었다. 특히, 가셰 박사와 아르망의 대화 장면은 마치 고흐가 만든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만큼, 라이브한 인물과 배경이 아름다웠다.

고흐 인생의 마지막 거처인 프랑스의 오베르 쉬즈 우아즈에서 그의 삶과 주변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절대적으로 침착한(absolutely calm) 상태였다고 고백했던 고흐가 6개월만에 자살로 삶을 마감한 것과 관련된 미스테리를 우편배달부의 아들, 아르망 룰랭이 추적하는 형태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영화를 통해, 그가 살았던 19세기 말, 100명의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서 프랑스 시골 마을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이 행복했다. 하지만, 위대한 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렇게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그 당시의 상황과 배경, 그리고 조금씩 드러나는 그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영화 보는 내내 무겁게, 안타깝게 마음을 짓눌렀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 크레딧과 함께 빈센트(Starry, starry night으로 더 알려진 노래) 음악이 나왔을 때에는 마치 나의 가까운 지인을 방금 떠나 보내는 것과 같은 슬픔이 밀려왔다.

고흐의 편지집에는 밑줄 쳐가며 기억하고 싶은 문구들이 매우 많았다. 그가 실제로 부치지 못한 마지막 편지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그래, 내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우리는 그가 생명을 건 작품들을 통해 위로받고 있는 것이다. Thank you, Vincent!

영화 소셜 네트워크를 보고

영화 소셜 네트워크를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페이스북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우선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개념이 상당히 깔끔하지 못해서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것인지 혼란스럽습니다. 또 실제 세계에서 얼굴도 모르는 친구들로부터의 요청을 거절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덜컥 수락하기에는 노이즈에 대한 부담이 상당히 큽니다. 어쨌든 무섭게 성장하고 있고 구글을 능가하는 유일한 인터넷 플랫폼이 되어가는 페이스북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영화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인공인 마크 주커버그(Mark Zuckerberg)는 하버드 대학교의 문제 투성이인 심리학과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마음먹고 재미있겠다고 생각한 일이면, 학교의 규정, 동료나 친구에 대한 예의, 사회적인 통념 따위는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괴짜인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정말로 “쿨”한 것을 처음으로 소개하고, 그것이 예상치 못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호”와 지지를 받게 되고, 실제로 기존의 일하는 방식이나 소통하는 방식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주는 것! 그것이 마크가 페이스북을 통해 만들어낸 것입니다. 반면 공동 창업자인 그의 친구 에듀아도 사브린(Eduardo Saverin)은 아주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사람으로 영화에서 그와 갈등을 빚습니다. 아무리 쿨한 사이트여도 당장에 광고를 끌어오지 않으면 돈벌이가 안 된다는 아주 현실적인 생각이지요. 그에 대해 냅스터의 창업자인 숀 파커(Sean Parker)는 오히려 당장의 돈보다는 더 쿨하고 더 멋진 서비스를 만드는 것에 더 재미있어 하는 사람으로 마크가 페이스북을 다른 대학과 다른 나라에 크게 확장하는 데에 도움을 줍니다.

영화를 보면서 현실에 있는 사람들의 캐릭터와 영화의 캐릭터가 자꾸 비교되었습니다. 제 주변에도 숀 파커같이 재미있고 쿨한 가치를 추구하고, 크고 거친 꿈을 꾸는 사람이 있고, 반면에 현실적인 걱정으로 가득차있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항상 바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잘 어울리면 정말 멋진 시너지가 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가치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기 쉽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마크나 숀처럼 큰 꿈을 꾸고 싶고, 재미있으면서도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큰 일을 직업으로 삼아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역시 당장의 현실적인 문제로부터 그리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금년 초에 미국 실리콘 밸리(즉, 팔로 알토,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 등)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오라클이 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구글, 기업용 협업 시스템으로 유명한 자이브소프트웨어, 소셜텍스트 등의 회사 사람들을 만나고 또 팔로 알토 시내를 돌아다니며 전세계 사람들을 열광시킨 여러 가지 혁신의 근원지는 공기가 어떻게 다른지 느껴보려고 했습니다. 짧은 기간에 그것을 알기도 힘들었고, 말로 표현하기도 쉽지 않겠지만, 굳이 그것을 압축해서 표현한다면, “재미”와 “열정”이었습니다. 썬과 같이 큰 회사나, 소셜텍스트와 같이 작은 회사나 모두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해 너무나 재미있어 하고, 자기들이 만들어내는 가치를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나눠주고 싶어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재미있어하고, 다른 사람들이 별로 시도해보지 않았지만 그 일이 앞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고 모험을 하는 스타트업 기업들에게 투자하는 앤젤 투자자들이 미국 사회에는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벤처와 창업 붐이 있었으나, 성공하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대기업 위주로 짜여진 우리 나라의 경제 시스템의 위계 질서에 부딪쳐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저도 큰 기업의 울타리 안에서 모험을 꺼려하고, 기존 질서만을 옹호하는 늙수그레한 중견 관리자가 되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슈퍼맨과 이현석

수퍼맨이었던 사나이 영화의 한 장면: 휘날리는 빨간 망토를 입고 지붕 위에 서있는 주인공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영화를 봤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작정을 하고 봤다기보단 무작정 영화관에 가서 시간이 되는 영화를 고른 결과였지요. 영화로서 그다지 박진감 넘치는 재미는 없었습니다만 나름대로 흥미로운 소재를 다룬 영화였습니다.

‘슈퍼맨’, 미국식 발음으로 ‘수퍼맨’은 남자 애들이면 한 번 쯤 꿈꾸어봤을 법한 영웅입니다. 어렸을 때 수퍼맨 시리즈를 참 재미있게 봤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망또를 휘날리며 멋지게 하늘을 날고, 눈에서 광선이 나가고, 입에서 세찬 바람이 나가고,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쏜살같이 날아가 착한 일을 하는 수퍼맨! 이번 숭례문 화재에 수퍼맨이 날아왔더라면 하는 아쉬움까지 생깁니다. 수퍼맨과 같이 정의로우면서 힘센 사람을 우리는 갈망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의 수퍼맨은 진짜가 아니었지요. 단지 자신이 수퍼맨이었다고 믿는 과대망상에 빠진 한 정신 장애인일 뿐입니다. 과대망상은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정신 질환의 증상입니다. 지금까지 다른 영화에서 다중 인격 등 현실적으로 찾아보기 어렵지만 보다 드라마틱한 이상 행동을 다루었다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이현석은 과장되기는 했지만 꽤 그럴 듯한 인물입니다. 사실 그는 과대망상을 가졌지만 남에게 해를 끼칠만큼 위협적이지는 않습니다. 만약 우리 사회가 이렇게 고도로 문명화되지 않고, 사람들이 여유있게 원시적인 생활을 즐긴다면, 이런 사람도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이웃으로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훨씬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며, 사람들의 이해 관계가 얽혀있습니다. 자동차나 전기와 같은 문명의 전리품들은 생활의 편의를 더해주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인한 사고의 위험도 커졌습니다. 이런 문명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격리되기 마련이지요. 주인공은 정신 병원에서 환자들을 다루는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을 ‘하얀 악마’라고 칭했었지요. ‘하얀 악마’는 조금이라도 ‘정상적’이지 않는 사람들을 ‘이상적’이라고 규정하고, 그들을 ‘치료’해야만 하얗고 깨끗한 세상이 된다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는 모습이 점점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깨끗이 치워야 하거나,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하거나, 또는 바꾸거나, 고치거나, 소독하거나, 때로는 박멸해야 합니다. 그렇게 치료받아 이현석으로 돌아온 ‘수퍼맨’은 과연 행복했을까요? 비록 허구이지만 자신이 수퍼맨이라는 믿음이 기쁨을 주고, 에너지를 준다면, 약물로 그의 에너지와 기쁨의 원천을 빼앗아가버리는 것이 반드시 옳은 일일까요? 혹시 우리는 그런 비정상적인 것, 비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되돌려야 깨끗해진다는 강박적인 집단 결벽증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까요?

영화에서 남을 돕는 수퍼맨과 광인 이현석은 동일 인물입니다. 즉, 전적으로 악한 인물, 전적으로 선한 인물, 전적으로 이상한 사람, 전적으로 옳은 사람, 전적으로 나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나름대로 삶의 방식이 있고,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만든 엄격한 잣대와 숨쉬기 힘든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 또는 다른 기준으로 바라봐야만 이해가 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그런 사람들은 우리가 기다리는 수퍼맨이나 선한 사마리아 사람같이 좋은 사람의 모습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하얀 악마’가 되어 마지막 남은 ‘광인’을 ‘계도’하려고 매달리지 않고, 조금 여유있게, 너그럽게 바라보면, 영화속 희정이(어린 아이)처럼 이현석과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넘치는 유쾌함, 헤어스프레이

헤어스프레이주중에 하루 휴가를 냈습니다. 그동안 밀렸던 은행 일들을 끝내기 위해 시외 버스까지 타고 왔다갔다 하며 오늘 하루만 은행을 다섯 군데나 돌았습니다. 그렇게 모든 일을 마치고 오산에 돌아왔는데 웬지 그냥 집에 들어가기엔 아까운 것 같아, 영화관에 들러 시간 되는 것으로 선택한 영화가 바로 헤어스프레이! 포스터를 보아하니 웬 촌스러운 여자가 전면에 웃고 있는 것이, 분명히 삼류 코메디일거라고 생각하고 들어갔습니다. 언제나처럼 오산의 영화관은 자리가 남아돌기 때문에 가장 보기 좋은 자리에 턱 하니 앉아서 느긋하게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드디어 짠~

“안녕, 볼티모어(Good morning, Baltimore)”라는 노래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게 가만히 듣고 있자니 상당히 기분 좋게 만들고, 귓가에 착 달라붙습니다. 음, 심상치 않은 영화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죠.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 통쾌, 상쾌한 춤과 음악들이 멈추질 않습니다. 주인공은 트레이시는 외모로는 볼품없는 뚱보 소녀이지만, 낙관적이고, 낭만적이고, 재능이 넘치며, 희망적인 미래에서 현재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벨 소리를 들을 수 있고(I can hear the bell), 불합리한 관행과 관습을 바꾸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가이자, 탐험가이고, 혁신주의자입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복고적인 의상과 머리 모양, 그리고 춤과 노래, 사람들의 대화, 흑백 텔레비젼를 통해 현존하는 세계 최대 강국인 미국의 옛날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1960년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the 60’s)”라는 재미있는 노래를 통해 그 때에 미국이 변화의 소용돌이에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21세기 시각으로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 그 당시에는 불가능했었더군요. 흑인과 백인이 사랑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거니와, 흑인과 백인이 함께 TV에 나올 수도 없고, “검둥이의 날(negro day)”이 지정되어 그 때엔 흑인들만 따로 TV에 나오는 참 어처구니 없는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불합리한 것들은 평등한 세상이 미래이고 대세라는 믿음을 가진 주인공과 흑인들의 투쟁에 의해 바뀌어갑니다. 아마 몇 십년이 지나서 우리가 현재를 뒤돌아보면, 우리도 똑같은 생각을 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가 되면 지금은 이단자나 몽상가로 찍히는 사람들이 미래에는 선구자(frontier)로 인식될지도 모르지요.

아무튼 기대하지 않았던 수작이었습니다. 영화 보는 내내 재미있고, 유쾌하며, 영화 보고 나면 스트레스가 확 날아갑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로 만들어서인지, 노래가 참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노래가 영화를 지배하다보니 영화 속 대사, 메시지, 표현이 함축적이고, 비유적이며, 위트있고, 감동적인 것들이 많습니다. 어디서 노래 가사나 영화 대본을 구하고 싶어집니다. 아직 영화의 장면들이 따끈따끈한 상태일 때에 몇 개를 까먹기 전에 얼른 정리해보았습니다.

볼티모어 꽃게 아가씨(Miss Baltimore Crabs)
이것은 그냥 기억나는 재미있는 영어 표현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지역 특산물과 연계해서 무슨 지역 고추 아가씨 선발 대회가 있었던 것처럼, 미국에서는 볼티모어 꽃게 아가씨라는 표현을 쓰나보네요.
사랑이 없는 인생은 여름이 없는 계절이고, 드러머가 빠진 록큰롤이다 (Without love, life is the season without summer, rock ‘n’ roll without drummer.)
그 밖에도 사랑이 없는 삶이 뭐와 같다가 몇 개 더 있었는데, 이게 가장 기억에 남는군요.
체크 무늬를 만들자! (Do the checkerboard!)
이건 흑인 시위대가 피켓에 써놓은 메시지 중에 하나입니다. 백이 있으면 흑이 있어야 조화가 된다는 참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또 하나 재미있었던 표현은 “TV는 흑과 백이 다 있다 (TV is black and white)”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이렇게 안하고 “TV has colors!” 정도로 쓰지 않았을까요? ㅋㅋ
당신은 나의 영원한 사랑! (You are my timeless to me.)
주인공 트레이시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부르는 노래 가운데 나오는 가사입니다. 영원하다는 표현에 참 가슴이 찡하게 만드는 노래였습니다.
이것이 미래다! (This is the future!)
흑인과 백인이 함께 어우러져 신나게 춤추는 것이 생방송으로 나가는 것을 멈추라고 말하는 방송국 매니저 벨마에게 쇼 호스트인 코니가 거절하며 내뱉은 짧은 한 마디!
빅 사이즈 전문 옷가게 (hefty shop?)
정확한 표현이 잘 기억나질 않는데, 아무튼 헤프티만 생각나네요. 그런 가게가 따로 있다는 것도 재미있고, 헤프티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온라인에서 온통 어거스트 러쉬가 화제이던데… 아직 못 봤습니다. 그러나, 헤어스프레이! 강추입니다.

무지개 원리와 즐거운 인생

무지개 원리부모님이 먼저 보시고 꼭 읽어보라고 강권(?)하며 주신 책 중에 하나가 무지개 원리였다. 나는 사실 이런 식으로 성공의 비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책들은 보통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단편적인 연구 결과들이나, 자신의 주장에 들어맞는 에피소드나, 선대 사람들의 문헌에서 맥락을 잘라버린 한 두 줄을 인용하여, 마치 모든 것이 확정적인 것처럼 강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또 보통은 사회/정치/문화적인 가치나 맥락은 제거되고, 개인과 개인 마음먹기에 따라 모든 것이 확확 바뀌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이런 대중 심리학(pop psychology) 책이 심리학을 전공으로 조금이라도 맛보았던 사람들에게는 가장 읽기 힘든 책이다. 학교에서 심리학을 공부할 때에는 모든 것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도록 훈련받게 되는데, 회사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주어진 것을 사실이라고 믿고, 받아들이고, 열정적으로 추구하고, 목적에 부합하는 것을 사실로 내세우기 위해 필요한 주변의 모든 것들을 논리적으로 꿰맞추는 구성 능력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이런 책을 읽으며 긍정적인 자세를 갖도록 훈련된다.

딜레마는 이것이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과학적으로 검증된 방법들은 많지 않아서 보통은 역사나 자신의 경험이나, 또는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 그럴듯하게 보이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따르는 것이 경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즐거운 인생자, 이런 복잡하고 삐딱한 시선을 조금 누그러뜨리고 긍정적이고 수용적인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면 매 페이지에는 금과 같이 소중한 지혜들이 가슴에 콕콕 와닿는 사례들과 함께 담겨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저자의 7가지 무지개 원리로 요약된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꿈을 품고, 뚜렷한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면 목적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희망과 용기를 주는 샘물같은 메시지이다.

인생 뭐 있어! 머뭇거리지마!라는 영화 즐거운 인생의 카피가 무지개 원리를 방금 읽은 후의 나에게 비수처럼 꽂힌다. 신나고 즐거운 락 음악 영화이지만 영화 보는 내내 눈시울이 붉어졌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40대 아버지들의 철없는 반란의 결론은 무엇일까? 주인공들의 앞으로 삶이 불을 뿜는 활화산이 될지, 아니면 연탄불에 희미하게 익어가다 꺼져가는 조개구이가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저질렀다! 그리고 적어도 저지른 그 순간 그들은 참 행복해보였다. 무지개 원리에서도 그랬었다. 꿈을 꾸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품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관건이라고. 이 말이 내 가슴에 미묘한 파장으로 전해온다.

내 청춘에게 고함, 김영남 감독

내 청춘에게 고함 영화에 나오는 세 주인공일요일이 종영일인 ‘내 청춘에게 고함’이라는 영화를 보기 위해 오산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낙원상가 내에 있는 조그마한 극장으로 갔다. 내가 예술 영화나 독립 영화에 조예가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바로 영화를 만든 감독이 초등학교 때 아주 친했던 영남이였기 때문이다. 영남이로부터 마지막 날이니 한 번 보러 오라는 전화 연락을 받고, 흔쾌히 가겠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의 기억 속에 영남이는 전형적인 모범생에 순진남이었다. 대학도 대학원도 모두 전산학 쪽으로 택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대학원을 그만두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다. 솔직히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 때까지 가지고 있었던 영남이의 이미지와 영화를 만드는 영남이가 잘 결합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나는 날아가고…너는 마법에 걸려 있으니까’로 깐 영화제에서 주목받더니 이번에는 ‘내 청춘에게 고함’이라는 영화로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두 개 부문 수상을 했다.

일요일 영화가 시작되기 전과 영화가 끝난 후 영남이를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전에 처음 감독이 되었을 때에 만나서 사당에서 방배를 지나가는 버스 안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났다. 그 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초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영남이는 변함없이 짧고 단정한 머리의 수줍은 모범생 이미지였다. 나는 영화 감독이면 뭔가 튀어보일 줄 알았는데, 그는 겉으로 보기에 전혀 변하지 않아 보였다.

그의 영화 속에서 때론 혼란스럽고, 그러면서도 웬지 풋풋하고 동정심이 가는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삶의 모습을 보며, 아직도 청춘의 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거울속에서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영화에 대해 거의 모르지만, 어쨌든 좋은 영화였다. 대형 상업 영화가 아닌 이런 아기자기한 작은 영화를 보며 다양성을 즐길 수 있는 내 자신이 행복했다. 마치 휴대용 캠코더를 몰래 들이내민 듯한 자연스러운 영상 속에서도 적절한 영화적인 극적 전개와 절제된 언어는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더구나 그것을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잘 아는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니…

호로비츠를 위하여

호로비츠를 위하여 영화 포스터: 엄정화가 연필을 쥐고 피아노를 가르치는 장면이 진짜 피아노 선생님 같다.퇴근 후 혼자 오산 시네웰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갔다. 다빈치 코드나 미션 임파서블과 같은 영화도 있었지만 피아노 영화라는 “호로비츠를 위하여”를 보고 싶었다. 평일이고 별로 흥행하지 못한 영화인데다 작은 도시의 극장이어서인지 영화관엔 채 10명도 안 되는 관객들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주 한적하고 여유있게 영화에 빠져들 수 있었다. 변두리 피아노 학원 선생님인 지수는 유학을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컴플렉스를 갖고 있다. 그런 그에게 부모를 잃고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는 경민이가 나타난다. 지수는 경민이 음악에 대해 숨은 재능을 가진 소년임을 알고 자신의 처지를 바꾸어줄 구세주가 나타난 것으로 기대하고 그를 가르친다. 가르치는 과정에서 귀에 익은 많은 곡들이 나온다. 한 때에는 음악도를 꿈꾸며 피아노를 배우면서 기쁘고, 힘들고, 좌절하고, 지겹고, 행복했던 기억들이 영화 장면과 겹쳐서 지나갔다.

산수국민학교 뒤쪽 피아노 학원에 다니면서 ‘수도 피아노’와 ‘삼익 피아노’, ‘영창 피아노’ 소리가 참 많이 다르다고 느꼈다. 수도 피아노의 웬지 서민적인 소리와 삼익 피아노의 조금은 절제된 저음부 위주의 소리보다 고음이 맑은 영창 피아노 소리를 개인적으로 좋아했었다. 그리고 왜 그 당시 피아노 선생님은 “도레미파”를 “도레미화”라고 발음했는지 궁금했었다. 예외없이 바이엘, 체르니로 이어지는 따분한 피아노 레슨보다는 광고 음악이나 만화 음악, 그리고 TV와 라디오를 통해 나오는 온갖 종류의 음악을 흉내내고 변형하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에 또래의 남자 아이들보다 오랬동안 피아노를 배웠던 것 같다.

음악을 하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다 지수와 같은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을 것 같다. 누구는 유학 갔다 와서 콩쿠르 심사 위원이 되고, 누구는 콩쿠르 나가는 아이의 동네 피아노 선생님이 된다. 그러나 부모를 잃고 세상과 벽을 쌓은 경민의 컴플렉스와 상처는 콩쿠르에 나가서 멋지게 자신의 인생을 빛내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피아노 선생님 지수의 기대를 보기좋게 무너뜨린다. 그리고 찾아오는 할머니의 죽음으로 경민은 갈 곳이 없어지고, 그런 경민을 지수가 키우면서 처음에는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었지만, 음악과 피아노를 매개로 둘은 진정한 친구가 된다.

어쩌면 뻔한 결말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몇 번씩이나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언제나 큰 소리로 웃으면서 자신의 수줍음을 드러내는 피자 가게 아저씨도 참 매력적이고, 철없는 피아노 선생님 엄정화도 매력적이다. 영화에서도 나왔고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음악에서 재능과 환경과 운이 따라 성공한 소수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느끼는 부러움은 참 크다. 그리고 다른 분야와 달리 그런 부러움은 성공한 현 상태에 대한 부러움이라기보다 성공하지 못한 요인이 자신의 재능 부족일 것이라는 내적 귀인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아쉬움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 대미를 장식하고, 음악 자체가 주는 힘과 영화의 스토리가 축적해놓은 벅찬 느낌이 한꺼번에 밀려와 넋을 잃을 정도였다. 오랜만에 본 가슴 따뜻한 영화, 주위에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