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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식의 다른 생각 (보관)

보편적 디자인 접근성에 대한 잘못된 접근

신승식 2005.02.18 00:57 조회 수 : 48164

 

광진구청에서 장애인과 노인을 위한 홈페이지를 만들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직접 방문을 해보았습니다.

웹 표준을 매우 충실하게 지원해주고 몇 가지 편리한 기능 때문에 제가 사용하는 최신 버전의 오페라 브라우저에서 아예 첫 페이지가 뜨지 않고 아래와 같은 엉뚱한 코드가 보이더군요.

<%@ page contentType="text/html; charset=euc-kr"
language="java" import=" java.sql.*, java.util.*"
errorPage="" %>

예전에 제가 다니던 회사에서도 JSP를 주로 사용하면서, 프로그래머의 실수(또는 무지)로 비 인터넷 익스플로러 계열 브라우저에서 댕그러니 저런 메시지만 뜨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던 경우가 있었습니다. 순수 HTML 파일의 경우 그냥 통상적인 웹서버(Apache, IIS 등)에서 처리해 표시하면 되는데 이것에 괜히 JSP 페이지에 붙는 directive를 잘못 붙여서 JSP 컨테이너에게 처리를 넘겨줘서 생긴 결과입니다.

사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표준을 지키는 많은 브라우저들(Mozilla, Mozilla FireFox, Opera, Safari, Netscape 등)에서 (다 테스트해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동일한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광진구청 웹마스터에게 두 차례 메일을 보냈습니다만 아직 답변은 오지 않았고, 페이지도 현재까진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시리즈로 계속 있습니다. 시각 장애인을 위한다고 별도의 음성 홈페이지라는 아주 희한한 페이지를 제작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페이지에 들어가면 잔뜩 긴장하게 만드는 ActiveX 플러그인을 몇 개씩 깔아야 합니다. 그냥 순수한 Windows XP 서비스팩 2 사용자는 물론이고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사용하지 않는 많은 사용자들은 그냥 바보가 되어버립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비장애인용 페이지에서 장애인용 페이지로 가는 링크도 없고 장애인용 페이지로 가려면 이상한 단축키 조합을 눌러야 합니다. 그것을 페이지의 제목(title)에 넣어놓았고, 음성으로 녹음되서 나오더군요. 스피커 꺼놓은 사람이나, 청각 장애인, 한국어 듣기가 잘 안 되는 외국인에게 불편함을 줄 뿐만 아니라, 이것은 스크린 리더(screen reader)를 사용하는 시각 장애인들에게는 똑같은 내용을 두 번 읽어주기 때문에 오히려 불편함을 가중시키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그 키 조합이하는 것도 HTML에서 표준으로 제공하는 accesskey 속성을 쓴 것도 아니고 Windows 기반의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아니면 아무 소용이 없는 조합입니다. 그리고 홈페이지에 친절하게 한답시고 그 이상한 키 조합들로 각종 메뉴를 이용할 수 있게 해놓았더군요.

메뉴도 아주 문제가 심각합니다. 메뉴의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플래시를 사용했는데 상위 메뉴에 마우스를 갖다 대면 하위 메뉴가 아주 춤을 추며 화려하게 등장합니다. 마우스 사용이 서툰 노인들에게 어려움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마우스를 쓸 수 없는 중증 뇌병변 장애인과 시각 장애인들은 아예 메뉴를 쓸 수가 없습니다.

장애인용이라고 해서 콘텐츠 자체에서 특수한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것은 문제를 키울 소지가 더 큽니다. 이미 웹을 사용하고 있는 장애인들은 나름대로 여러 가지 보조 기술(assistive technologies)을 사용해서 기존의 웹을 탐색하여 정보를 얻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웹의 표준을 지켜서 가장 전형적인 웹 인터페이스를 따르는 것이 장애인에게도 가장 접근하기가 쉬운 페이지가 될 수 있습니다. 일일이 콘텐츠에서 음성을 녹음해서 안내를 해주면, 텍스트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TTS 장치와 충돌을 일으킵니다. 표준에 따르지 않는 이상한 단축키를 콘텐츠에서 제공해주면 사용자들이 사용하는 OS, 브라우저, 그리고 보조 기기 등에서 원래 사용하는 단축키와 충돌을 일으켜 오히려 혼란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웹 브라우저가 표시할 수 없는 콘텐츠 때문에 별도의 플러그인을 설치하라는 것 자체만으로 컴퓨터 초보자들과 장애인들에게 접근성과 사용 편의성을 떨어뜨리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런 플러그인을 쓰지 않고 웹의 표준에서 제공하는 다른 방법은 없을지를 먼저 철저하게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그런 플러그인이 불가피하게 필요하다면, 그 플러그인은 아주 범용적인 시스템에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정말로 플러그인을 설치하지 못하는 사용자를 위해서 플러그인이 없을 때에 원하는 원래의 정보를 얻으려면 어디를 대신 보면 된다는 안내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 밖에도 차마 장애인용으로 페이지를 만들었다고 언론에 자랑스럽게 나오기에는 사용성에 대한 기존 관습과 사용자들이 통상적으로 기대하는 인터페이스의 전형, 그리고 웹 표준을 완전히 무시한 기본이 되어있지 않은 사이트입니다. 모질라 사이트의 어떤 분이 지적하셨듯이 이런 방법이 좋은 사례로 잘못 알려져 네이버(naver)나 다음(daum)과 같은 대형 사이트들이 이런 방법을 따라하다가 우리 나라 웹이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접근 불가능하고, 국내의 아주 특수 계층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아주 희한한 Korean Web이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한국어 모질라 사이트의 웹 표준화 프로젝트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 보기

장애인과 소외 계층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웹의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 출발입니다. 그 기본이란 웹의 표준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합니다. 아주 많은 개발자와 디자이너들이 HTML은 공부할 가치도 없다고 여기지만 HTML 표준에 대해서 거의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어서 생기는 문제는 매우 심각합니다. 많은 디자인 책에 보면 아직도 <H1>, <H2>가 글자를 키우는 태그라고 엉터리로 설명이 되어있고 그런 설명은 많은 곳에서 베껴서 전파되어 잘못된 코딩 습관은 널리널리 퍼져있습니다. 아마 표준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참고로 HTML 표준은 W3C에서 제정하였고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HTML 4.01 표준도 W3C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웹을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에 관해서도 역시 W3C에서 웹 콘텐츠 접근성에 대한 권장안을 만들어놓았습니다. 그 권장안 중에는 지키기 어렵거나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내용(예를 들면 동영상에 자막을 넣어야 하는 일 등)도 있지만 대부분은 상식적인 선에서 HTML 표준을 잘 지키고, 모든 사람이 쓰기 좋도록 대안적인 접근 경로를 확보하고, 이해하기 쉽고 단순하고 명쾌하게 웹을 제작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나마 접근 방법은 아주 잘못 되었지만 장애인과 노인을 고려했다는 사실 하나는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쉽게 구현할 수 있는 것을 아주 많은 예산을 들여서 오히려 접근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 잘못된 방법으로 접근한 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 나라의 많은 정부 기관 홈페이지들이 그런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해 대부분 기능과 내용이 비장애인용 홈페이지보다 훨씬 빈약한 시각 장애인용 홈페이지를 따로 두고 있습니다. 장애인은 시각 장애인만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접근성에 대해서 너무 어렵게 접근하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동등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쉽고 간편하고 단순하게, 보편적인 디자인 원리에 맞추어 제작하는 것은 사실 광진구청에서 자랑스럽게 예산을 써가며 할만큼 어려운 작업이 아닙니다. 광진구청과 같이 첫 단추를 잘못 끼워 한국에서의 접근성이 정말 엉뚱한 방향으로 나갈까봐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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