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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식의 다른 생각 (보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책표지더위를 먹었는지, 아니면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가슴이 답답하고, 눈에 경련이 일어나 회사를 하루 쉬었다. 집에서 쉬면서 예전에 선물받았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책을 집어들었고, 책을 하루만에 다 읽고 덮었지만, 이 감동은 오래 갈 것 같다.  어렸을 때, 이 이야기를 책에 앞서 연극으로 봤었다. 그것이 내가 태어나서 처음 본 연극이었는데, 어린 제제가 나와서 관객들에게 직접 다가와 "아저씨, 구두 닦으세요."라고 외쳤던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이 내가 연극이라는 장르를 무척 좋아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작은 악마의 유혹에 장난기가 수시로 발동하여 사고를 치는 귀여운 다섯 살 꼬마 제제, 그리고 그의 동생, 어린 왕 루이스, 그를 이해하고 돌봐주는 착한 누나 글라라, 그의 형 또또까, 그리고 그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가르쳐준 "당신", 비운의 마누엘 발라다리스(뽀르뚜가),  마지막으로 제제의 둘도 없는 친구 밍기뉴(슈르르까)에 이르기까지...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때 간직하고 있었던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 나는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다섯 살 제제의 환상 속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볼기짝을 얻어맞으며 몸이 성할 곳이 없는 제제는 아버지가 실업자인 가난한 집 아이이지만, 학교에서는 못 생겨서 인기가 없는 선생님을 위해 꽃을 훔쳐 꽃병을 채워주는 똑똑하고 영민한 천사이다. 그에게는 언제부턴가 모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밍기뉴라는 나무 친구가 생겼다. 그러나, 밍기뉴와 제제의 친구 뽀르뚜가의 나무, '까를로따 여왕'과 함께 나무들은 늙어가고, 다섯 살 제제는 밍기뉴의 환상에서 벗어나며 커간다.

다시 보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통해 나도 오래 전 어렸을 때 내 속에 있었을 천진함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 첫 사랑, 그리고 동네를 소란스럽게 만들었던 작은 악마를 깨울 수 있었다. 이미 다 커버려 더 이상 가시 덤불을 아마존의 밀림으로, 검은 닭을 아프리카의 표범으로 여기는 환상에 빠져드는 일은 없겠지만, 그에게 처음 사랑을 가르쳐준 뽀르뚜가가 죽고, 그의 절친한 말벗, 밍기뉴가 잘려나갔을 때, 마치 나의 사랑과 친구를 잃은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그런 아픔을 통해 제제는 자라날 것이고, 나는 이렇게 커 버렸지만...

세상이 지겹고, 삭막하고, 살아가는 것이 팍팍하다면, 다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어보라. 브라질 사람들의 순진하고 따뜻한, 그리고 제제가 안내하는 환상과 모험의 세계를 통해 마음속에 숨어있었던 밝게 빛나는 태양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명작 중에 명작을 선물해준 이에게 깊은 감사를 전해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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