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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식의 다른 생각 (보관)

착각은 자유 퍼온 글: 주민등록번호, 이대로 좋은가?

신승식 2003.08.06 00:40 조회 수 : 145320

 
숙녀의 생일은 반드시 기억하되 그 나이는 잊어야 하는 것이 서구사회에서 진정한 신사가 되기 위해 요구되는 덕목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생년월일을 모두(冒頭)에 내세우고 있는 주민등록번호 덕분에 신사가 되기 위한 자질을 갖추기에 큰 어려움이 없는 편이다. 다만 생일이 음력으로 등록되었거나 출생신고지체 과태료를 회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달리 신고 된 예외적 경우를 간과할 때는 낭패를 당할 위험이 있기는 하다.
우리의 주민등록시스템은 이웃 일본이 부러워 할 정도로 완벽에 가깝게 구축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주민등록번호 체계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 측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의 주민등록번호는 13개의 숫자가 사용되어 YYMMDD - SAAAARC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YYMMDD의 6자리 숫자는 별다른 데이터 변환기법 없이 인간이 인식하기에 가장 용이한 형태의 단순코딩방법이 사용됨으로써 개인의 생년월일이 직접적으로 명백하게 노출되고 있다. 또한 현행 표기방식은 100년 즉 36,525일분의 데이터를 분류할 수 있으나 이론적으로 6자리 숫자는 100만개의 날짜를 분류할 수 있으므로 스페이스 경제성 측면에서도 그 효율성은 3.65%에 불과하다.

주민등록번호 뒷부분의 첫째 숫자 S는 남성에게는 ‘1’ 여성에게는 ‘2’를 부여하여 성별을 구분할 목적으로 고안되었다. 1900년대 생일만을 수용할 수 있는 번호체계 상의 한계인 소위 Y2k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서 2000년대에 출생한 국민에게는 ‘3’과 ‘4’를 부여하는 방식이 채택되었고, 이 방식에 따르면 우리의 주민등록번호는 향후 400년간 그 체계를 유지하는데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술적 문제의 유무에 관계없이 우리의 주민등록번호는 굳이 공개되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운 개인의 성별을 확연하게 보여 주고 있으며, 이 같이 노출된 성별 정보는 생년월일 정보와 함께 표적 마케팅(target marketing)에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우리의 주민등록번호는 최초 주민등록지 정보를 행정구역별로 분류하기 위해 AAAA의 4자리 숫자를 활용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우리의 주민등록번호는 번호 소유자의 출신지역을 읍ㆍ면ㆍ동 단위로 친절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 행정구역에서의 등록순서를 나타내는 R은 출생신고의 신속성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기우이긴 하나 한 행정구역에서 동성(同性)의 동일(同日) 출생자가 10명을 초과할 경우에는 번호부여방법이 없는 문제도 있다. 마지막으로 C는 기술적으로 사용되는 점검지수(check digit)로서 프라이버시와는 무관하나 그 생성논리(生成論理)의 단순성 때문에 많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요구되는 성인인증을 위한 주민등록번호 생성 프로그램에 쉽게 악용되고 있다.

우리의 주민등록번호는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인간의 두뇌가 용이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주민등록번호는 컴퓨터 네트워크가 없었던 개발연대에 프라이버시 침해를 의식조차 못하고 행정관리의 효율화를 최우선적으로 추구했던 행정우선주의의 산물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민소득 2만불 시대로 진입하기 위한 길목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야 할 중요한 문제의 하나는 주민등록번호 체계이다. 존엄한 인격체인 국민 개개인을 행정의 편의를 위해 숫자에 의해 분류하는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견해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이름이 고유식별지표(unique identifier)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현대사회에서 번호부여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 그 번호체계는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도록 품위 있게 설계되어야 한다. 개인의 생년월일, 성별, 출신지역 등의 정보는 사소한 듯 보이나 공개적으로 알려지거나 노출되어서는 아니 되며 어떠한 비용을 치르더라도 보호되어야 하는 소중한 프라이버시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처럼 생년월일을 사용하여 번호를 부여하는 저돌적(?) 사례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 개인정보의 노출을 의식하지 못하거나 부지불식간에 당연시하는 우리의 정신적 관성(mental inertia)이 현행 주민등록번호 체계의 유지를 가능하게 해주는 지주(支柱)인지도 모른다.

번호체계의 품위는 단순성과 무의미성에서 나온다. 하나의 번호체계나 제도에 될 수 있으면 많은 정보를 담으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수년전 기술적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도입이 좌절되었던 전자주민증 제도 역시 최대한의 정보를 담으려는 과욕이 실패의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주민등록번호는 가능한 한 간단하고 그 안에 담긴 정보가 없어서 불친절하며 무의미해야 할 것이다.

윤석훤
--* 약력 *----------------------
+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학사
+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 석사
+ Univ. of Wisconsin-Madison Computer Sciences 석사
+ Univ. of Wisconsin-Madison 경영학과 박사
+ KISDI 특화연구단 단장
+ e-mail : yoons@kis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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