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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식의 다른 생각 (보관)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책표지남녀 문제는 아주 사적인 문제이고, 사람마다 특성이 달라서 사람마다 주장하는 바가 다 다르다. 이런 제각각인 문제들과 사례들을 많이 관찰한 결과 저자는 그 속에서 나름대로의 공통적인 규칙을 찾아냈다. 즉, 남자와 여자는 애초부터 다르기 때문에 그 다른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항상 오해와 다툼, 말썽이 생기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첫번째 차이로 남자는 여자의 말을 경청하여 듣기보다는 섣불리 문제해결에 나서려 하다 일을 그르치고, 여자는 남자가 원하지도 않는 조언을 함으로써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린다고 지적하였다. 일견 그럴듯한 말이다. 그리고 책의 끝까지 그는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행성에서 왔다고 할만큼 다른 존재이니, 제발 그 차이점을 좀 이해하려고 노력해보아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가 말하는 차이점이 많은 남자와 여자들에게서 공감을 얻고 있다고 한다. 즉, 사람들이 아주 많은 사례들을 접하면서도 그 사례들의 이면에 숨어있는 원인, 또는 기제(mechanism)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표현하는 언어도 다르고,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도 다르고, 이성에게 점수를 주는 방법도 다르고,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주는 상황도 다르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석연치 않은 점이 떠올랐다. 그 중에 첫 번째는 남자와 여자가 단지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모든 것이 그렇게 다른 것이 사실일까 라는 진실에 대한 의문이었다. 무슨 박사인지는 모르겠지만 박사(Ph.D.)이며 자기 분야에 상당한 권위자인 저자는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자신있게 남자는 이렇고 여자는 저렇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일까? 실험을 해봤을까? 그는 설문조사를 해봤을까? 통계를 내봤을까? 그럴 것 같지 않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사람의 특성(trait)을 넘어서 대응 규칙, 나아가 수량화된 지표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즉, 남자와 여자의 특성이 이러하니 남자는 1단계, 2단계, 3단계 이렇게 대응하고, 여자는 이럴 때 몇 점의 점수를 주기 마련이므로 남자는 명심하라는 것이다. 그는 1단계 다음에 3단계가 아닌 2단계가 와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 그는 여자가 이럴 때 몇 점의 점수를 준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혹시 오직 자신의 뛰어난 직감과 검증되지 않은 몇몇의 사례들로부터 그는 섣불리 규칙을 만들고 일반화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사실 세계의 참을 검증해보지 않고, 자신의 내적인 논리적 그럴듯함(palusibility)만을 고려하여 만든 온통 허구와 억지 주장은 아닐까? 그가 많은 관찰과 사례들을 접함으로써 얻어진 귀납적인 결과라고 해도 나는 여전히 의심이 남는다. 귀납적인 결과들은 그것이 아주 체계적이고 엄격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자신이 미리 세워둔 편견의 틀에 맞는 사례들만 선별적으로 수용하게 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게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떠오르는 생각은 그가 주장하는 남성의 전형과 여성의 전형이 사실 기술로서 멈추기에는 생각보다 위험하다는 것이다. 즉, 그가 제시하는 남성의 특성은 남자는 이렇다고 기술하는 것을 넘어서 은근히 남자는 이래야 한다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여자에 대해서도 물론 마찬가지이다. 그는 남자는 요청하지 않는 조언을 받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그리고 여자는 문제 해결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해주기를 원한다고 한다. 즉, 남자는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을 가장 싫어하고, 여자는 혼자 버려지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여자는 자존심이 없고, 남자는 공감받고 싶은 감정이 없는 것일까? 혹시 저자는 은근히 남자는 자존심이 있어야 하고, 능력이 있어야 하며, 여자는 모름지기 남자가 항상 도와주어야 한다는 보수적인 남녀의 성역할 고착화를 두둔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내가 책을 보면서 혼란을 느낀 것은 책에 나오는 남자들의 특성보다 여자들의 특성이 나에게 오히려 많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책을 끝까지 읽고 덮을 때까지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나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바람직한 남성적인 특성을 지니지 못한 연약한 남성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주장하는 남녀의 특성은 다양한 사람들의 개성과 특질을 무시한 위험한 성차별적인 일반화일 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성차별을 당연하고 바람직하게 수용하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주 지루했기 때문에 괜히 심술이 나서 덧붙이고자 한다. 어떤 책은 일견 단순해 보이는 문제에 대해서도 그 문제의 다면적인 특성을 곳곳이 파헤쳐 감탄을 자아내는 것이 있다. 또 어떤 책은 문제의 몇 가지 특성을 밝히고 나서 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말을 이렇게 바꾸고 저렇게 바꾸어 계속 반복하기도 한다. 앞의 부류에 속하는 책들은 언어의 마술에 의존한다기보다는 통찰과 관찰력, 그리고 엄청난 실증적인 증거, 그리고 무한한 활용, 그리고 새로운 생각할 거리를 수없이 제공한다는 점에서 아주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뒤의 부류에 속하는 책들은 저자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억지로 쥐어짜낸 사례들과 똑 같은 주장을 이렇게 바꾸고 저렇게 바꾼 언어의 기술에 의존해 페이지 수를 채우게 마련이어서 책읽는 사람들이 아주 지루해 지는 것 같다. 불행하게도 이 책은 나에게 다양한 생각거리를 제공해주지 못하고 단순한 내용을 반복적으로 강변하는 듯하여 지루하게 느껴졌고, 계속되는 저자의 위험한 사실 단정과 당위성에 대한 주장이 오만하게 느껴졌다.

이 책을 보고, 또는 그의 세미나와 강연을 듣고 고통에서 벗어났고 관계가 개선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아주 강력한 최면과 환상에 빠진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사실과 진실로서 근거가 희박한 것도 강력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강력한 치료 효과를 가져다주거나 적어도 치료 효과가 있었다고 믿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몇몇 체험담은 처음에 주장을 편 저자와 같은 사람들의 지어낸 생각을 점점 사실이라고 믿게 만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