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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식의 다른 생각 (보관)

책과 영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신승식 2003.02.19 21:00 조회 수 : 19503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책표지 박완서의 글은 이상 문학상 수상집에 나오는 단편으로만 접해보다가 처음 읽게 되었다. 제목으로만 봐선 도대체 어떤 이야기인지 잘 짐작은 되지 않으나, 웬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구석이 있어서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딴 이야기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어휘력이 참 빈약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냥 '싱아'와 같이 요즘 도시 사람들로서는 정말 알기 힘든 특정한 명사를 몰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여북해야'라는 부사의 뜻도 문맥상으로 짐작은 가지만 완전히 확신하지는 못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였다. 작가가 되어 이런 말들을 글 속에서 완전히 구현하려면 얼마나 많은 단어를 알고 있어야 하는 걸까 하고 새삼 감탄하고 동시에 내 자신의 어휘력의 빈곤에 한탄하였다.

우리 근대사의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제 강점 시대와 해방, 그리고 6.25까지 작가와 작가의 '엄마'가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야기하듯 그려낸 소설이다. 앞에 읽었던 '봉순이 언니'에 나오는 공지영의 어릴 적 이야기는 어느정도 상상이 가능한 시절이지만, 일제 시대 말기와 해방, 그리고 좌우의 극한 대립, 6.25전쟁, 그리고 다시 좌우가 번갈아가면서 집권하면서 반대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과 숙청 속에서 기구한 운명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70년대에 태어난 나로서는 잘 상상이 되지 않는 궁금한 시절의 이야기였다.

일제 시대에 잘 살았던 사람들은 해방이 되자 수난을 겪게 되고, --물론 일제 청산이 역사적으로 되지 않았다는 그런 당위적인 이야기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 이런 시대적인 변화에 빨리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곧 삶의 파멸까지도 갈 수 있는 상황이 오게 된다. 6.25가 나기 바로 전까지도 글쓴이의 가족들은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오랜만에 '가정의 평화'를 즐길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수도 서울 사수'라는 허풍뿐인 구호를 믿고 순진하게 서울에 남아있다가 전쟁과 광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몇 번의 극한적인 상황 변화를 통해 개인으로서 이웃간의 신뢰는 무너지게 된다.

다시 북한군이 남하한다는 소식에 모두들 남으로 남으로 피난할 때에 '엄마'는 예전에 살던 가난한 산동네, '현저동'에 머무르는 계략을 짠다. 그리고 마치 폭격이 지나간 듯 아무도 없는 그 동네에서 글쓴이는 이 고약한 '벌레의 시간'을 증언해야 한다고 깨달으며, 궁금증을 잔뜩 남긴 채 글이 끝난다.

역사적인 사건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박적골이라는 시골 사람이 서울 달동네에 정착하고 이어 어느정도 삶에 여유를 갖게 되는 과정을 참 흥미진진하게 그려놓았다. 6.25가 날 것을 역사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 나는 '그 전날의 평화'와 '찬란한 그 날'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시끄럽고 복잡한 지하철에서도 궁금하고 가슴이 벅차게 뛰어올라 한눈을 팔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