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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식의 다른 생각 (보관)

착각은 자유 [CMHV] 친구되기 이야기

신승식 2002.08.05 00:40 조회 수 : 34982

 
지역사회정신건강자원봉사단(Community Mental Health Volunteers)에서 자원봉사경험담을 써야 한다고 해서 냈던 글이다. 1999년 '나는야 자원봉사자!' 소책자에 실렸다. 대학원때 쓴 글인데 책자에 실린 것은 이미 직장인이 된 후여서 직장인으로 잘못 나와있다. 여기에 나온 주인공인 ㅌ씨는 참 좋은 분이었는데 흐지부지 끝을 맺고 지금은 연락이 안되어 참 안타깝다.

제목: 친구되기 이야기

CMHV 신승식 직장인

ㅌ씨는 표정이 밝은 편이다. 약기운 때문인지 약간의 수자연스러운 발음을 제외하면 과연 그가 정말로 병력이 있는 사람일까 의심이 갈 정도로 기존에 내가 만났던 다른 회원들에 비해 밝은 모습이 좋았다. 그와의 약속은 내가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학교 앞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그가 별다른 불평을 하지 않고 학교 쪽으로 나와준 것에 대해 나는 고마움을 느꼈다. 처음에 몇 번은 그렇게 학교앞에서 만나 그 근처를 돌아다녔다. 그와 만남을 시작할 때 두 가지를 스스로 다짐하였다. 첫째는 그와의 만남이 인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그것이 개인적인 일인 동시에 목적성을 가진 일임을 상기하고 그와의 만남을 지속적이고 성실하게 유지하리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환자와 자원봉사자라는 어색한 관계가 아닌 평등하고 진실한 친구가 되도록 노력하리라는 것이었다. 격주에 한 번씩 그를 만났으며 일주일에 한 번씩은 연락을 하였다. 처음에는 ㅌ씨와 직접적인 연락만을 하였지만 차츰 그의 부모님을 통해서 알게 된 그의 가족들과의 관계는 기대 이상으로 좋은 것 같았다. 그는 스스로 환자임을 뚜렷하게 자각하고 있었고, 그것을 창피하게 여기거나 숨기려 하지 않았으며, 또 그것을 이용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동정을 얻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정말 완벽해 보였다. 내가 과연 그에게 무슨 존재일까가 고민되었다.

수 개월이 지난 후에 그와의 만남에 있어서 예전처럼 진지해지지 못하게 되었다. 첫째는 내 자신의 생활이 너무 빡빡해졌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그와의 만남에서 더이상 새로운 진전을 이루기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와 만나면 항상 '무엇을 해야할까'가 문제였다. 항상 테이블을 맞대고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이 정해진 첫번째 코스였다. 그리고는 산책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버스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하였다. 평등하게 만나기로 마음먹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가 주도적이 되어갔다. 또다른 문제점은 우리에게는 의외로 공유할 수 있는 축적된 경험이 적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을 가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대학생인 나를 항상 부러워하였고, 나는 애써 학력 격차의 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외면하려 하였다. 주변의 CMH 단원들에게 물어보았다. 다들 그런 문제를 어느정도 느끼고 있었으며 그 중에 한 명은 나에게 눈높이를 맞추라고 충고해주었다.

한 번은 비디오를 같이 본 적이 있었다. 그 영화는 일종의 공상과학 영화였는데 좀 난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ㅌ씨는 내내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들썩들썩하였다. 영화를 잘못 골랐그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선택이 된 후였다. 최소한 같이 보는 사람에 대한 예절을 지키지 않는 그가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는 앉아서 오랫동안 무엇을 바라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 때 일어난 일은 수없이 많이 생길 수 있는 잠재적인 문제점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는 적어도 나를 만났을 때에는 솔직하고, 밝고, 명랑했지만 그것이 지나쳐서 문제가 될 때도 있었다. 그는 너무나 솔직하고 꾸밈이 없어서 상대방의 존재를 의식해서 감출 것은 감추고, 필요한 경우에 마음에 들지않는 말이라도 예의상 동의해주는 그런 법이 없었다. 영화가 재미없으면 그는 내내 재미없다고 불평하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돈 아깝다고 불평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피드백을 받다보면 필요할 때에는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 필요할 때에 솔직해지는 세련됨이 그에게도 발견될 것으로 믿는다.

친구되기를 하면서 ㅌ씨가 정말로 주변에 있는 내 친구들처럼 부담없이 가까워지기를 바랬고, 또 그도 그렇게 느낀다면 정말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친구가 많지 않다. 친구되기는 그래서 필요할 것이다. 가족 외에는 대화를 나누고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돌이켜보면 성실하지 못하게 그를 대해왔던 나의 모습이 무척이나 후회된다. 세상의 모든 소중한 친구들 사이에도 우정에 책임감이 뒤따르듯이 CMHV에서 이루어지는 친구되기도 책임감이 필요한 것 같다. 도 친구 사이에는 짜증나는 일도 생기고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친구되기에서도 그것은 비슷하다. 나는 주변에서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환자라고 해서 특별하게 관용적으로 대하지 말라고. 그것은 어느정도 맞는 말이다. 예절 바르지 않게 행동하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려 할 때에는 솔직하게 알려주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행동들이 발견되었을 때에 그냥 참고 넘기거나 쉽게 짜증내거나 또는 만남 자체를 회피하게 된다. 친구되기를 하면서 가장 힘든 점 가운데 하나는 솔직함과 예의바름을 어떻게 타협해야 하는가이다. 그것은 아마도 모든 사람을 만날 때마다 부딪히는 문제일 것이다. 문제를 해결해 가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아마도 ㅌ씨도 나도 좀 더 성숙해지리라고 믿는다. 이번 주말엔 ㅌ씨를 만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