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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식의 다른 생각 (보관)

착각은 자유 [한마음] 나도 하나

신승식 2002.08.05 00:40 조회 수 : 39536

 
대학원 시절, 연희동 성당에 다닐 때 청년바오로라는 청년단체에서 활동을 했었다. 지금도 그 때 함께 고생하던 친구들을 잊을 수 없을만큼 강렬한 기억들이 많이 남아있다. 1998년경 청년바오로 큰일꾼이라고 성당 청년회지에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아 냈던 글이다.


나도 하나!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다 보면 컴퓨터를 많이 이용하게 된다. 선배들로부터 들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한 대 뿐인 타자기를 쓰기 위해 박사 과정부터 순서를 기다리던 시절, 그리고 오직 학기가 높은 박사과정만이 이용할 수 있었다던 애플과 XT 컴퓨터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내가 입학했던 불과 2~3년 전만 해도 우리 과에 네트워크에 연결된 컴퓨터가 딱 한 대, 그것도 PC가 아니고 무척 낯설어 보이는 '썬 스팍'이라는 괴물이었다. 그래서 전자 우편을 보기 위해서는 줄을 서서 한참 기다린 후에나 내 차례가 돌아왔다. 이용하는 동안 다른 사람의 눈치 때문에 쓰고 싶은 만큼 오래 쓸 수도 없고 얼른 자리를 비켜주어야 했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여 이제는 학과 내에 있는 모든 컴퓨터가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고 서로 자료와 프린터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컴퓨터가 많아지고 빨라져도 많은 사람들은 더 편리해지기 위해 노트북 컴퓨터를 구입하였으며, 이제 학과에 있는 컴퓨터를 쓰지 않고 자신의 책상에서 자신의 노트북으로 대부분의 작업을 하고 있다.

필요한 소프트웨어도 늘어나서 고가의 프로그램을 구입해 써야 하는데 학교에서는 아직도 하드웨어에 투자한 것만큼 소프트웨어에 투자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다 비싼 소프트웨어를 사거나 외국에서 희귀한 교육용 소프트웨어라도 들어오면 너나 할 것 없이 '나도 하나!'라고 외친다. 학과에 모든 사람이 사용하기 위해 준비된 CD는 내 것이 아니므로 불법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복제하여 '내 것'을 책꽂이에 꽂아놓아야, 그리고 '내' 컴퓨터에 설치해 놓아야 마음이 놓인다는 것이다. 그렇게 복사된 CD와 설명서는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록 거의 한 번도 보지 않게 된다. 외국에서 가끔씩 나오는 선배들 중에 국내에서 보기 힘든 책을 실험실에 기증하시는 분이 있다. 그 때에도 역시 자신의 연구 분야와 별 관련도 없는 책을 모두다 불법으로 '좌~악' 복사해서 책 표지에 자신의 이름을 써놓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난 가끔씩 신문이나 잡지에 멋진 컴퓨터 광고가 나오면 그런 컴퓨터를 갖게 되면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 상상해본다. 그러다가 비어있는 주머니를 생각하며 상상의 날개를 접어두지만 최신 컴퓨터를 갖지 못한 여전한 아쉬움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는다.

처음에 '호출기'라는 이상한 기계가 나왔을 때에 그것이 무엇에 쓰는 것인지 몰라 한참동안 바보 취급을 당한 일이 있었다. 그러다가 주위에서 연락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압력이 거세지자 급하게 호출기를 샀는데, 얼마 후부터는 그것이 울어주지 않으면 마음이 허전한 것이었다. 그리고 호출기를 사용하는 빈도는 낮아지는데 반해서 그것에 들어가는 만만치 않은 비용과 마치 족쇄를 찬 듯 언제 어디서라도 다른 사람의 부름에 응답해야 한다는 것이 싫어서 호출기를 없애버렸다. 호출기를 허리춤에서 떼어 버리니 얼마나 자유롭고 편한지 몰랐다. 건전지가 떨어질까봐 신경쓸 일도 없어졌고, 호출을 기다리며 초조해 하거나. 너무 많은 호출에 힘겨워 할 일도 없어졌고, 공공 장소에 들어갈 때마다 진동으로 바꾸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도 없어졌다. 요즈음은 휴대 전화를 이용하는 사람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한국통신에서는 말썽많고 관리하기 힘든 공중 전화를 늘리는데 인색해졌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자연농원에 놀러갔던 생각이 난다. 자가용을 가진 사람이 한 반에 한 명도 안 되었던 때였다. 우리 집에서는 다섯 식구가 용인 자연농원에 가기 위해 기사 아저씨가 있는, 냉방도 안 된 포니를 빌려서 탈 수 있게 되어 너무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2000년 쯤 되면 거의 모든 가정이 자가용을 가지게 된단다. 그럼 우리도 그 때에는 우리차를 타고 놀러 갈 수 있겠지."
자가용을 타고 어디를 돌아다닌다고? 정말 그런 시절이 올까? 생각하며 장미빛 미래를 꿈꾸어 보기도 하였다. 그로부터 20년도 더 지난 지금 우리는 그런 장미빛 세상에 살고 있을까?

과학 기술이 발전하여 점점 편하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기를 바랬지만 자가용이 도로를 점거해 버린 지금은 자가용을 가진 사람도, 자가용이 없는 사람도 모두 불편하게 되어버렸다. 컴퓨터를 도입하여 여가 시간이 많아질 것이라는 광고 문구와는 달리 사람들은 컴퓨터를 유지하고 보수하기 위해 더 많은 여가 시간을 빼앗기고 말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려대는 호출기와 전화 소리에 시달리느라고 공공 장소에서는 각별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물리적으로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고루 정보를 나누어주기 위한 인터넷은 컴퓨터가 없는 사람들을 더욱 사회에서 도태시키고 말았다.

대학원 실험실 내에서도 스스로 '난 한참 뒤떨어져 있다'고 느끼는 사람과 아무런 느낌이 없이 이 모든 것이 그냥 주어지겠거니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고급 승용차와 노트북 컴퓨터, 휴대 전화를 가지고 다니며 학생 식당은 맛이 좋지 않다고 밖에서만 점심을 해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학비를 대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방 값을 아끼기 위해 친구집에 빌붙어 살고, 남들이 점심먹으러 나갈 때에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이 있다. 그래도 대학원까지 보낼 정도의 집이라면 상당히 여유있는 집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에 라디오에서 들은 방송에 의하면 밥을 굶는 어린이들이 17만명도 더 된다고 하며 구제 금융이 결정된 이후 그 숫자는 더 늘어간다고 한다. 더욱 믿기지 않는 것은 그들 대부분이 학교에서 급식이 안나오는 주말에는 금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모두 여덟 끼를 굶고 지낸다는 것이다.
'꽃은 산에 들에 그대로 피어있을 때에 가장 아름답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것은 70년대식 '자연보호' 캠페인에서도 그리고 가끔씩 개인의 욕심을 질타하는 말 속에서도 등장한다. 그런데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90년대 후반에도 여전히 쓸모있는 말인 것 같다. 공유했을 때 가치가 더 커지는 재화를 단지 약간의 효율을 얻기 위해, 그리고 내 몫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들일 때에는 정말 신중했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이 나누어 쓰라고 버스와 전철이 있고, 공중 전화가 있으며, 공공 도서관이 있고, 학교에는 공용 컴퓨터가 있다. 밥을 굶는 사람들을 위해 보건복지부에서는 '푸드 뱅크'를 만들었다고 한다. 개인이나 단체가 가진 여러 가지 종류의 음식, 남아서 버려지지만 먹을 수 있는 깨끗한 음식을 모아 음식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는 것이다. 음식 뿐 아니라 다른 재화에 대해서도 나누어 함께 쓰는 지혜를 모아야 할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인간으로 살아가다 보면 끊임없는 물질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하느님 맘에 드는 자녀가 되기 위해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하고 고민하게 된다. 젊은 시절 스스로 대학생이라는 기득권층에 들어가 있음을 짐스러워 하면서도 한편으로 내가 가진 기득권의 혜택을 맘껏 누리며 편안해 하기도 하였다. 이제 어느덧 '청년 실업자' 대열에 끼어버린 지금은 기득권자가 가지고 있던 오만함과 과장된 자존심이 한 풀 꺾여버렸다. 한 편으로는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꿈꾸며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찾아보지만 여전히 또다른 나는 실업자 신분이 길어질 것 같은 불안함에 떨며 크지도 않은 떡에서 '나도 하나!'를 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된다.

세상의 재물은 하늘로 짊어지고 갈 수 없다. 예수님께서도 오늘밤 그의 영혼이 그를 떠나버리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어 자기를 위해서만 재산을 모으는 사람에게 경고하셨다. 물질과 효율의 편리함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조금 불편해도 나누어 쓰는 기쁨, 더디가도 보채지 않는 여유로움,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오는 자유로움와 편안함, 이웃과 떨어져있지 않다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주님, 오늘도 매사에 소유의 욕심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게 하시고, 가진 것을 나누고 겸손되게 살아가도록 도와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