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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식의 다른 생각 (보관)

착각은 자유 병무비리 의혹을 보면서

신승식 2002.08.09 00:43 조회 수 : 37033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두 아들에 대한 병무비리 의혹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분명 한 쪽은 극악무도한 사기꾼일텐데, 저렇게 눈에 쌍심지를 켜고 상대방을 사기꾼으로 몰다가 결정적으로 사실이 드러나면 과연 뭐라고 할까.

어느쪽이 진실인지는 검찰 수사가 밝혀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도 그 결과에 시원스럽게 승복할 만한 명백한 증거는 안 나올 것 같다. 이미 (내가 보기에는) 명백한 증거와 여러가지 정황 증거들이 수없이 나왔지만 병역비리의 당사자로 의심받고 있는 쪽에서는 나오는 증거마다 조작이라고, 음흉한 공작이라고, 그래서 그런 수사의 총책인 법무장관을 해임하겠노라고 큰소리친다.

기득권 정치인들의 싸움에는 관심이 없지만, 이번 일은 단순히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명백히 한쪽의 진실과 한쪽의 거짓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쪽의 거짓은 거짓을 진실처럼 보이게 하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뭐가 진실인지 알 턱이 없다. 그러나 내가 살아온 경험과 그 경험에서 터득한 지식에 비추어보면 병역 면제에 대한 의혹은 점점 사실로 믿겨진다. 확률에 기대어 진실과 거짓을 말할 수 없겠지만, 특별관리 대상인 대법원 판사의 두 아들이 아무런 병도 없이 갑자기 10kg씩 똑같이 몸무게가 줄어들어 병역이 면제될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한나라당의 소위 병풍 사인방에 김문수 의원이 들어가있다. 핸섬한 얼굴(그 정도면 충분히 핸섬하다. 역시 외모의 힘은 강력하다.)과 과거의 숱한 노동운동 경력, 그리고 민중당 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하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이재오씨와 함께 신한국당으로 옷을 바꿔입었다. 민중운동이 뿌리조차 내리기 힘들었던 보수적인 우리 사회에서 그것은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었고, 또 오히려 극우 파쇼 정당에 들어가서 그 집단을 민주화시킨다는 그들의 항변도 그냥 참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김문수 의원은 오늘 안기부 공작원 출신의 정형근 의원과 한 자리에 서서 한 부자 아빠의 고귀한 아들의 병역 비리를 감추려고 팔을 걷어붙였다. 그를 보면서 한없는 자괴감을 느낀다. 저 낮은 곳을 향한다는 그의 홈페이지 첫화면을 보면서 한없는 절망을 느낀다. 낮은 곳, 향할 데가 없어서 이회창씨 아들 비리를 감싸고 돌기로 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만약 자기가 참된 진실이고, 정의라고 믿었던 어떤 사람, 또는 어떤 사건이 실은 거짓이었고 온통 편견과 아집과 부정의 산물임을 알게 되었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생각을 바꿀까. 불행하게도 그는 쉽게 과거의 믿음을 깨버리지 못할 것 같다. 자기가 믿었던 과거의 진실 속에 묻혀 살아야 그는 행복하고 자신의 내적 일관성을 지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의 아집과 편견을 깨뜨릴만한 아주 극적인 사건 또는 증거가 나타나도 그는 애써 그것을 예외적인 경우라거나, 사실이 아니라거나, 아니면 잘못 보고 있다고 눈을 의심하거나 하면서 무시해버릴 것이다.

한 술 더 떠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처음에는 이것이 "선"과는 거리가 먼 "악"인 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한 번 저지른 행동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빛이 있어 자신의 행동은 누가 보아도 "악"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럼 그 악한 행동의 당사자는 그것을 인정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그렇지 못할 것 같다. 자신의 악을 인정한다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아주 힘든 일이다. 그것은 스스로의 전일성, 일관성, 선함을 부정하는 것이고 자기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까지는 그래도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는 최소한의 양심이 있어서 "사실은 내가 저지른 것은 악한 행동이었다." 라고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과거 행동은 "선한 것"이었다고 자꾸 강변해야 하고, 그렇지 않다고 다그치는 무리들과 맞서 싸울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 사람은 과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아마도 실제로 자신의 행동이 악이 아니고 선한 것이었다고 믿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악한 동기는 아마 깨끗이 잊어버리고 선한 것으로 왜곡된 기억만이 지배할 것이다.

이것이 심리학에서 말한 인지부조화 이론이 아닐까?

김문수 의원은 신한국당에 들어간 순간부터 자신의 일관성을 잘 지키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 병무비리의 방패막이로까지 나선 것이다. 그것만이 자신의 과거 행동을 더욱 더 정당화시켜주고, 편한 마음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은 과거의 노예일 수밖에 없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