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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식의 다른 생각 (보관)

책과 영화 여섯 개의 시선

신승식 2003.11.17 23:04 조회 수 : 19181

 
여섯 개의 시선 포스터
오늘 인권 모임에서 '여섯 개의 시선'이라는 영화를 봤다. 국가인권위에서 제작한 영화라길래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 궁금하기도 했고, 유명한 감독들이 다 참여했다고 해서 기대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꼭 보라고 권하고 싶은 영화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풍자적으로 다룬 영화다. 취직하기 위해 다이어트를 해야 하고, 쌍거풀 수술을 받아야 하는 여고생들을 통해 잘 생기고 날씬하고 쭉쭉빵빵인 예쁜 여자 또는 남자에 대한 환상이 누구에게나 깊은 내면에 깔려 있는 우리내 속마음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차별과 모순을 드러내주었다. 사람이 각자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가 외모에만 그것도 아주 편협한 범위에서만 인정되고 발견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퀴어적이기도 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미래의 '완벽한' 아파트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알쏭달쏭하기도 했다. 성범죄자이기 때문에 완벽한 아파트에서 경계의 대상이 된 남자와 오줌을 싸 완벽한 질서를 깨뜨린 아이는 어느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가장 무시되어야 마땅할 것 같은 사람들의 권리와 인간성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다.

세 번째 이야기는 뇌성 마비 장애인 이야기이다. 장애인으로서 이 온통 스피드와 생산성을 중시하고 예쁘고 능력있고 잘생긴 사람들 위주로 편성된 사회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겹고 버거운 일인가를 한 장애인을 통해 보여준다. 굳이 장황하게 입에 거품을 물지 않더라도 장애인이 최소한의 이동의 자유를 가질 수 있는 대중 교통 수단은 빨리 확보되어야 한다.

네 번째 이야기는 아이의 영어 교육을 위해 혀를 수술하는 장면이 나온다. 흔히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부모의 폭력과 강요는 무시되고 간과되기 너무 쉬운 것 중에 하나이며 어린이와 청소년의 인권은 많은 사람들이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문에 학교 현장에서도 학생을 위한다는 '사랑의 매'라고 가장한 폭력이 정당화되고 있다. 어린 아이에게도 자신의 미래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부모들은 종종 잊어버린다. 수술 장면이 너무 끔찍했다. 오늘 꿈에 나올까 두렵다.

다섯 번째 이야기는 '얼굴값'이라는 제목을 달았는데, 잘 생긴 남자 운전수와 주차장에서 일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예쁜 여자가 벌이는 실랑이, 그리고 충격적인 결말이 매우 어리둥절하게 만든 영화였다. 잘 생긴 사람, 예쁜 사람, 얼굴이 이런 사람은 이래야 한다는, 또는 이럴 것이라는 것 때문에 우리는 못 생긴 사람에 대해 차별을 하기도 하지만, 잘 생긴 사람에 대해서도 역차별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얼굴값 못하는 잘 생긴 사람들은 얼마나 스트레스 받겠는가. 얼굴과 신체적인 특징에 의해 사람의 모든 것이 판가름날 수는 없는데도...

여섯 번째 이야기는 예전에 뉴스에서 한 번 봤었던 그야말로 충격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다. 찬드라 꾸마리 구루는 네팔에서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의 제3세계 국가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 한국의 엘리트들이 신봉하는 최신 의학과 과학, 그리고 행정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과, 정신 장애인과 부랑인들에 대한 그릇된 시각이 무고한 네팔 노동자를 6년 동안이나 정신 병원에 가두어놓게 만들었다. 찬드라 꾸마리 구루라는 이름은 Never Ending Peace and Love라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국가가 개입해서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 한 편으로는 찝찝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가 생겼다는 것만으로 우리 사회는 큰 진보를 한 것이다. 얼마 전에 국가인권위원회와 대통령의 행정부가 붙은 적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국가 기관인 인권위가 행정부와 다른 의견을 낼 수 있느냐고 질타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능률과 효율을 중시하는 행정부에 인권을 먼저 생각하라고 다른 소리를 내기 위해 생긴 것이다. 똑같은 앵무새 소리를 반복하려면 인권위를 왜 만들었겠는가?

과거 군사 정권 시절에는 권력과 국가의 보이는 커다란 폭력 앞에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만이 인권을 위한 싸움이라고 했으나 지금은 보이지 않는 일상의 폭력과 차별이 더 심각한 것 같다. 미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동이나 말을 하고 있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폭력과 편견의 파도에 같이 휩쓸리기도 한다. 이럴 때에 '인권'이라는 중심을 견지하고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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