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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식의 다른 생각 (보관)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2. 중남 아마리카, 알래스카 책표지 초판이 1996년에 나왔다고 하니까 상당히 오래 전에 나온 책이다. 집에 내려갔다가 서울로 올라오면서 차안에서 볼만한 책을 대충 하나 집어가지고 온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부모님이 예전부터 한비야 시리즈를 다 읽으시고 좋다고 읽어보라고 하셨는데, 이제 그 중에 단 한 권을 시작한 셈이다. 시간을 짬짬이 내서 보느라고 오래 걸리긴 했지만 한 번 손에 집으면 내용이 흥미진진해서 다음 날 출근을 걱정하면서도 이른 새벽까지 보다가 아쉬워서 책을 덮곤 했다. 잘 나가는 외국계 홍보 회사를 그만두고 과감히 몇 년동안 세계 일주에 나선 것도 놀라운데, 그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잘 먹고 잘 살고, 화려하고 깨끗하고 번쩍이는 곳이 아니라 못살고, 지저분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오지를 혼자서 배낭만 짊어지고 여행했다는 것에 놀라움과 부러움과 존경을 감출 수가 없었다. 왜 흔히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의 이루지 못하는 꿈이 직장에서의 스트레스와 속박에서 벗어나 단 한 달만이라도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것도 이루기 만만치 않은 꿈일텐데 그는 무려 7년이나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행을 했으니, 사실 직장에서의 얽매임을 짜증내하면서도 그 기득권을 붙잡고 놓치지 않으려는 속이 좁은 나같은 일반 사람들은 감히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게다가 영어 뿐만 아니라 스페인어, 일본어 등을 자유롭게 말하면서 현지의 사람들과 금방 친구가 되고, 우리와는 사뭇 다른 세계 여러 나라 오지에 사는 사람들의 정서와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오히려 떠나는 한비야를 붙잡고 싶을만큼 현지 사람들에게 깊은 우정을 심어주고 온 것을 보니 정말 She is something.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나같으면 일단 배낭을 짊어매고 춥고, 덥고, 먼지나고, 힘든 환경에 오랫동안 씻지도 못하고, 음식도 맞지 않는 생활 자체를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아무 것이나 잘 먹고 아무 데서나 잘 잔다고 하니 일단 배낭족으로서의 기본 자질이 갖춰진 셈이다. 그리고 특유의 친화력은 서로 다른 언어, 피부색, 문화, 나라, 인종의 벽을 넘고 한 핏줄, 한겨레임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우리의 울타리를 훨씬 뛰어넘어 우리와 사는 방식은 다르지만 인류 공통의 보편적인 정서인 따사로운 애정을 직접 확인하게 하였다. 책을 통해서도 그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참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과테말라의 아티틀란 호숫가에 산다는 가난한 레히니씨 가족 이야기가 가장 감동적이었다. 날마다 먹는 것이 토르티야와 후리훌레스, 커피 뿐이지만 조그마한 일에도 기뻐하고, 한 가족이 한 식탁에 앉아 평화롭게 식사하는 것을 큰 행복으로 여기고 감사하는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도 행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그리고 왜 우리가 스스로 불행하다고 하면서 원망을 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한비야 누님(?)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의 근황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월드비전 한국지부에서 긴급구호 팀장을 맡고 있다고 한다. 아마 오지 여행을 통해서 세계인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이제 그는 발로 뛰어다디면서 다시 세계인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을 것이다. 참 재미있게 본 책이었고, 흔히 말하는 세계화와 인터내셔널(international)이란 것이 잘 사는 나라들에 맞춰 못 사는 사람들이 가랭이 찢어지게 좇아가는 것만이 아님을 느끼게 해 준 귀한 글이었다. 시리즈의 나머지 책들이 고향에 있어서 언제 보게 될지 모르지만, 안방에 앉아서 세계 오지 마을을 돌아다니는 재미는 남미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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